코로나 시대가 한창이던 2021년에 해방촌으로 공간을 옮기신 뒤 어느덧 2년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웰컴 레코즈가 전개하는 다양한 활동이 코로나 전후로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최근 근황도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원래 레코드 제작 대행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제작 공장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한 게 아무래도 가장 큰 변화인 것 같고요. 코로나 초기에 도산공원 인근의 매장을 정리하고 현재 매장이 있는 해방촌으로 옮겨온 것 역시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리적인 위치가 바뀌었으니까요. 사실 해방촌으로 매장을 옮기면서 1층 공간을 음악 관련 전시, 플리마켓, 파티 등 이벤트만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여의찮았습니다. 그래서 당초 계획과는 달리 카페 겸 바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의 뿌리라고도 볼 수 있을 360 Sounds 아티스트분들의 활동을 접할 때마다 인상적이었던 건, 장르 불문 왕성한 디깅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일종의 내공이 엿보인다는 것이었는데요. DJ로서, 레코드숍의 대표로서 ‘디깅, 수집’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제가 수집하는 게 음반밖에 없긴 해서 그걸 예로 들자면, 물론 저도 디지털 음원을 사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MP3는 온전히 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아무래도 무형적인 파일이다 보니 그렇겠죠. 그래서인지 레코드를 수집하는 것의 매력은 ‘이 음악이 온전히 내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형태가 있는 음반을 직접 만지며 살필 수 있다는 점 역시 매력인데, 마치 음악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다른 디깅이나 수집의 매력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레코드숍의 대표이기 이전에 DJ로서 굉장히 오랜 기간 활동해오셨습니다. 앞선 질문과 같은 맥락에서 턴테이블을 활용한 바이닐 플레이와 디지털 플레이어를 활용한 디제잉 역시 큰 차이가 있을까요?
저는 2004년부터 DJ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대략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바이닐로만 플레이하다가 2010년부터 CDJ와 같은 디지털 믹싱 장비가 보급되면서 두 방식 모두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19년부터는 다시 바이닐 위주로 음악을 틀고 있고요. 비유하자면 바이닐로 플레이하는 건 수동 미션 자동차를 운전하는 느낌, 디지털 믹싱은 자율주행 자동차를 운전하는 느낌이랄까요? 바이닐로 디제잉할 때는 정말 많은 요소를 하나하나 섬세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LP와 맞닿는 바늘을 어떤 걸 쓰냐에 따라서도 나오는 소리가 달라지고요. 한 노래를 다른 노래와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비트매칭 과정에서도 박자 등의 정보가 계기판에 모두 뜨는 디지털 믹서와 달리 바이닐로 틀 때는 온전히 귀로 듣는 감각에 의존해야 하거든요. 그런 요소들을 온전히 고려하며 음악을 튼다는 느낌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앞선 질문의 연장선에서 웰컴 레코즈가 음반을 선별하는 기준이나 그것을 소개함에 있어 중시하는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웰컴 레코즈를 론칭하고 운영하게 되신 동기와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웰컴 레코즈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바이닐로 플레이하는 DJ의 숫자가 정말 적어서, DJ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음반들을 소개해 보자는 게 출발점이었어요. 근데 아무래도 사업이 확장되면서 지금은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아무래도 저부터가 DJ이기 때문인지 제 취향이 많이 반영되는 건 있어요. 보통 레코드숍을 한다고 하면 록이나 팝 음악 관련 앨범들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웰컴 레코즈는 하우스, 테크노, 소울, 힙합, 디스코 등의 장르 앨범이 주를 이루고 있거든요. 저를 포함해서 함께 운영하는 동료들의 취향이 곧 저희의 선별 기준이기도 합니다.
로컬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오신 DJ의 관점에서 최근 클럽씬 또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의 동향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인상적인, 혹은 주목할 만한 콘텐츠 또는 경향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클럽 씬이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부터 양적으로는 크게 팽창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 요즘 재미가 없다고 느끼던 차였어요. 예전에는 이태원만 하더라도 케이크샵(Cakeshop)에서는 언더그라운드 성향의 진보적인 음악을 기대할 수 있었고, 소프(Soap)에는 특유의 프렌치 감성이 있었고, 트리피(Trippy)는 몽환적인 감성이 가득했죠. 이태원에 위치한 어떤 클럽에 가더라도 고유한 색채가 뚜렷했던 거죠. 그런데 요즘은 공간 수는 늘어났는데 딱 두 장르밖에 없어요. 힙합 아니면 테크노. 이런 흐름이 이태원이든, 압구정이든, 홍대든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상업적인 클럽이 아니라면 성공할 수가 없다는 일종의 공식이 생겨버리니 다채로운 개성에서 얻는 재미는 사라져 가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국내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에서 이태원이란 지역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요즘은 다소 부침이 있지만, 다양한 음악과 다양한 문화가 포용되는 곳. 한국에서 거의 유일한 곳 아닐까요?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이태원 지역 자체적으로도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인지 공실이 심심찮게 보이거든요. 사실 저희도 매장을 옮길 때 이태원 대로변 역시 고려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들어갈 수가 없었거든요. 저는 이런 모습이 심리적, 문화적인 경직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적인 단면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요.
일련의 상황 속에서 이태원은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할까요?
오랜 기간 이태원을 상징해 온 해밀턴 뒷골목만 가봐도 아시겠지만, 주점 위주의 평범한 상권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제 여느 동네랑 다른 게 없는 것 같아서 다소 아쉬워요. 예전처럼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개성 강하고 매력적인 소규모 공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타 인터뷰에서 해방촌으로 이전하실 때 가장 중요했던 건 공간의 컨디션이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입지가 변경되면 동네 자체의 무드나 오가는 분들의 유형 및 특성 역시 변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와 관련하여 체감하신 변화가 있으신가요?
압구정로데오 방면에 있을 때는 인근에 스투시(STUSSY)나 미스치프(MISCHIEF)와 같은 유명 매장이 있어서 그 공간을 목적지 삼아 인근을 방문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이라 관광객분들이 오가는 빈도도 높았고요. 그런데 해방촌으로 옮기고 나서는 방문하시는 분들의 유형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관광객분들보다는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나 레코드를 좋아해서 오시는 분들의 비중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이태원’ 하면 어떤 떠오르는 키워드가 연상되나요?
다문화, 포용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뭐든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오픈 마인드가 곧 이태원인 것 같아요.
앞서도 비슷한 맥락의 말씀을 해주셨는데, 혹시 이태원만의 관용적인 마인드를 경험하신 일화 같은 게 있을까요?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정도로 기억합니다. 제가 한창 DJ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때였죠. 그때 이태원의 어느 클럽에서 플레잉을 마치고 새벽에 테이블이 5개 정도 되는 조그마한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거든요. 들어갔는데 한 테이블에는 게이, 다른 테이블에는 레즈비언, 또 한 테이블에는 흑인 친구들이 앉아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정말이지 온갖 군상들이 한 공간에 모인 모습을 보며 이게 지구촌이란 생각이 들었죠. 다른 동네에 가면 이상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사람들도 이태원에서는 그저 서로 다른 사람일 뿐이라는 느낌이 가장 생생하게 와닿았던 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소방서 뒷골목 언덕 방향에는 게이 힐이 있고, 트랜스 클럽이 여전히 존재하는 등, 이태원에서는 정말 모든 게 공존하고 있잖아요. 그냥 그런 모습이 쭉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브라질 음식점도, 아프리카 음식점도, 지금처럼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