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내부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이태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도 들려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 이태원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나나영롱킴 (나나영롱킴)

코로나 이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은 일요일에 파티를 해왔거든요. 원래는 일요일에도 사람이 북적였으니까요. 그런데 코로나 직후에는 일요일 이태원에 사람이 모이지 않았고, 예전처럼 일요일에 문을 열던 업장들도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일요일에 문을 연 곳이 없어 방문 인원이 오히려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래서 저도 역시 파티를 다시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태원 일요일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싶은 마음에 디제이, 댄서, 드랙퀸, 가수들을 초대하는 입장료 없는 파티를 5개월 정도 이어오고 있어요. 걱정도 많았지만 서서히 방문객이 늘어 지난 달에는 400명이 방문했거든요. 저는 앞으로도 사람들이 이렇게 일요일에 이태원으로 온다면 평일 역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여전히 이태원은 살아 있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커피 외적으로 헬카페의 어떤 지점을 방문하든 눈에 들어오는 상징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꽃, 스피커, 굿즈 등이 그것일 텐데요. 매장 경험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이런 요소들은 헬카페란 브랜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요즘은 고객 경험 등 다양한 용어로 그런 부분을 표현하곤 하는데, 저희는 단순하게 어떤 공간을 갔을 때 좋았던 요소들을 모아서 넣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제가 커피를 열심히 내리고 일정 수준 맛있다는 평가도 듣곤 하지만 그걸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제공할 만큼의 배짱은 없거든요. 카페에 갔을 때 음향이 별로인 것보다는 당연히 좋은 게 좋잖아요. 그리고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요. 누군가는 취향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또 누군가는 취향이 같아서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을까, 정말 단순히 그런 접근이었습니다. 다만 굿즈를 만들 때 유독 그렇지만, 이왕이면 잘 만들고 잘 꾸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웰컴레코즈 (DJ ANDOW)

소방서 뒷골목 언덕 방향에는 게이 힐이 있고, 트랜스 클럽이 여전히 존재하는 등, 이태원에서는 정말 모든 게 공존하고 있잖아요. 그냥 그런 모습이 쭉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브라질 음식점도, 아프리카 음식점도, 지금처럼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일상적인 소재를 해체하고 조합하여 독창적인 결과물로 완성하시는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영감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얻고 계신가요?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이곳저곳 산책하는 길 위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는데요. 특히 동네 골목길에 계신 어르신들께서 갖고 나와 앉아 계시는 의자나 사용하시는 물건들을 보며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등받이가 부러진 의자를 끈이나 철사를 덧대어 수선하신 모습을 보면 생활에서 나오는 재료들을 과감하게 활용하는 방식이 작가들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감정이나 생각을 적어뒀다가 어떻게 이미지로 구체화할지 천천히 생각해보곤 합니다.

이태원과 처음 연을 맺게 해준 그 공간은 어떤 곳이었나요?

울프소셜클럽 (김진아 대표)

맥파이 브루잉을 알고 난 이후로 이태원을 드나들게 되었죠. 그전에는 홍대에서 대학 생활을 한 뒤로 10년 넘게 주거와 업무 모든 걸 강남에서만 해왔기 때문에 이태원과는 접점이 없었는데요. 2012년경 친구와 함께 맥파이를 처음 방문했을 때 뭔가 새로운 대안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뻤어요. 그러면서 동네 자체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고, 아예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맥파이 친구들과 친해져서 브랜딩이나 제품 네이밍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2023년도 어느덧 절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VISLA의 2023년 상반기 근황이 궁금합니다.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상반기에는 VISLA FM을 런칭하고 정착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매거진을 새로운 분위기로 쇄신하는 데 에너지를 쏟은 것 같습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나영롱킴 (나나영롱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만 자유로워 달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딱 그거야! 계속 이렇게 네 맘대로 살아라, 이태원아!”

로컬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오신 DJ의 관점에서 최근 클럽씬 또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의 동향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인상적인, 혹은 주목할 만한 콘텐츠 또는 경향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웰컴레코즈 (DJ ANDOW)

클럽 씬이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부터 양적으로는 크게 팽창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 요즘 재미가 없다고 느끼던 차였어요. 예전에는 이태원만 하더라도 케이크샵(Cakeshop)에서는 언더그라운드 성향의 진보적인 음악을 기대할 수 있었고, 소프(Soap)에는 특유의 프렌치 감성이 있었고, 트리피(Trippy)는 몽환적인 감성이 가득했죠. 이태원에 위치한 어떤 클럽에 가더라도 고유한 색채가 뚜렷했던 거죠. 그런데 요즘은 공간 수는 늘어났는데 딱 두 장르밖에 없어요. 힙합 아니면 테크노. 이런 흐름이 이태원이든, 압구정이든, 홍대든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상업적인 클럽이 아니라면 성공할 수가 없다는 일종의 공식이 생겨버리니 다채로운 개성에서 얻는 재미는 사라져 가고 있는 거죠.

주로 온라인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2년 동안의 코로나 사태는 역시 녹록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SCR이 전개하는 다양한 활동과 그 방향성이 코로나 전후로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우사단 스튜디오에서 지금의 녹사평 스튜디오로 이전하자마자 코로나 유행이 시작되었거든요. 그렇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코로나 기간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금전적으로는 계속 어려웠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말씀드리는 건 아니고요. (웃음) 당시 클럽을 비롯한 오프라인 공간들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에 SCR과 같은 채널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활동이 집중됐거든요. 그래서 그 기간 동안에는 클럽 파티의 느낌을 낼 수 있는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기도 했는데, 엔드 코로나를 맞아서 페스티벌을 비롯해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온전히 뒤로 하고 맞이한 사실상 첫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VISLA가 전개하고 있는 활동과 그 방향성이 코로나 전후로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온라인 상의 작업 이외에도 오프라인 파티나 이벤트를 기획해 왔는데, 지난 몇 년간 팬데믹으로 중단된 프로젝트가 많아 답답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과 스킨십할 수 있는 일들을 꾸미고 있습니다. 해외 교류도 멈춰있던 상황이라 향후 더 많은 아시아 나라들, 유럽과 미국까지도 VISLA가 닿을 수 있도록 준비해보려 합니다.

그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 울프소셜클럽과 같이 신념을 교감하고 전파하는 공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울프소셜클럽 (김진아 대표)

저는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공간보다는 주인장의 철학이나 관심사가 엿보이는 곳을 방문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 공간을 보며 이런 사람이 있구나 추측하고 경험하는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같은 맥락에서 울프소셜클럽이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그런 스토리와 철학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없이 많은 유행하는 가게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기억 상실의 도시 서울에서는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고요. 같은 맥락에서 그런 공간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계속 버텨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마치 팝업 스토어나 페스티벌처럼 잠시 생겼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한 자리를 지키며 이어가는 무언가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이태원을 오갈 때도 이 가게가 계속 있는지, 저 가게는 혹시 문을 닫았을지 그런 걸 계속 체크해 보거든요. 그러면서 안도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갈만한 공간의 수가 줄어드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하고 말이죠. 제가 이태원에 처음 정착하게 된 이유도 사실 좋아하는 공간 때문이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욱 각별한 것 같습니다.

고객 관점에서 뮤직바와 클럽 같은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요소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볼레로 (손기정 대표)

공간 자체의 아우라랄까요? 스테이지에 오르는 DJ에 대한 팬심이나 동경일 수도 있고, 어떤 클럽에서 오늘은 누가 음악을 튼다고 했을 때 그 문화 자체에 한번 섞여보고 싶다는 생각일 수도 있겠죠. 요즘은 그런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내공을 갖춘 공간의 숫자가 예전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공간들이 추구하는 음악의 장르가 너무 단조로워진 면도 있습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만 해도 공간의 철학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소개하고 있는데, 국내는 힙합 아니면 테크노인 양상으로 흐르고 있거든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뮤직바나 클럽의 핵심적인 매력 요소 중 하나인데, 그런 다양성이 약해진 것은 다소 우려스럽습니다.

이런 맞춤 정장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양복점에는 주로 어떤 손님들께서 방문하시나요?

선테일러 (이생로 대표)

대개는 기업의 CEO나 고위 공직에 종사하는 분들, 법조인 분들이 많이 방문하시는 편이에요. 다른 게 아니라 아무래도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하는 공적인 자리에 참석하는 빈도가 높은 분들일수록 몸에 잘 맞으면서 멋과 품위를 갖춘 맞춤복이 필요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결혼 예복을 맞춤 정장으로 마련하려는 분들이나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교관, 공사관, 주재원분들도 종종 방문하시는 편입니다.

‘다이닝 바 & 클럽’이란 통상적인 분류로는 볼레로를 온전하게 설명하기에 다소 애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시점 기준, 볼레로를 어떤 공간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요?

볼레로 (손기정 대표)

대외적으로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좋은 노래들을 소개하는 뮤직바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카바레에서 영감을 얻은 공간이고요. 국내에선 카바레라고 하면 성인 유흥 업소로 인식이 좋지 않은데, 사실 그 원류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카바레는 그야말로 사교의 장이었거든요. 볼레로 역시 업종과 배경, 취향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와서 좋은 음악 듣고 칵테일 마시면서 교류하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앞선 질문에서 말씀해 주신 이태원 지역의 특성이 웝트샵 위치를 선정할 때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웝트샵 (이석준 대표)

사실 이 공간에 자리 잡은 과정은 지역 특성과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된 건 아니었습니다. 웝트샵을 운영하기 전 다른 일을 할 때 이태원을 자주 드나드니 먼저 한남동에 사무실을 구했는데요. 한 1년 정도 지금의 웝트샵 자리가 비어있는 거예요. 근데 전면이 널찍하게 트여 있고 구조적으로도 괜찮아 보여서 관심이 갔고 결국 공간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남동이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였던 것 역시 마음에 들었고요.

사실 카페란 지극히 반복적이면서도 고독한 노동을 감당해야만 하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처음 목표하신 기간 대비 굉장히 오랜 기간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이러한 롱런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당연하게도 많은 분들께 사랑받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죠. 사실 큰 뭔가를 생각하며 카페를 해온 건 아니고, 바둑돌 하나씩 두다 보니 1,000승을 거둔 조훈현 기사님의 일화와 같은 느낌인데요. 매일매일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오픈하고, 마감하는 반복적인 일을 하는 와중에도 오시는 분들이 매일매일 다르고 커피 상태가 매일매일 다르잖아요. 그런 부분이 단순하고 지겨울 수 있는 일보다 재밌으니까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태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도 들려옵니다. 인근 권역에 계신 입장에서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마하 한남 (김동현 소장)

가까운 옆 동네인지라 이런저런 용무로 이태원을 종종 드나듭니다. 최근에는 점차 원래의 모습을 점차 회복해 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임대료가 전반적으로 너무 높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인지 공실이 많고, 아무래도 사건·사고 발생이 많았기 때문인지 다소 경직된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사건 전후로만 침체된 느낌이지 언젠가 다시 가보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어요. 마치 히어로 무비 주인공 가운데 초인적인 재생력을 지닌 캐릭터처럼 회복 능력이 대단한 동네랄까요? 장사를 할 때 컨셉이 과해도 이태원이니까 받아들여지는 요소들도 있는데, 다른 동네에 비해 실험적인 것에 열려 있는 그런 태도가 생명력을 만들어 낸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보광동에서 느끼고 있는 이런 다양성을 이태원 역시 가지고 있는데, 그런 면면이 더욱 깊게 뿌리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역량을 키우고 각자의 생업이나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공공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적절하게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태원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정말 많은 이들 사이에서 제법 탄탄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거든요. 이러한 현황에 관심을 갖고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졌으면 해요. 그와는 별개로 저희 보광극장 역시 지역 예술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고요.

코로나 시대를 뒤로 하고 맞이한 사실상 첫해였습니다. 현재 집중하고 있는 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사실 요즘 보광극장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살고 있어요, 보광동에>란 작품을 공연할 때 용산교육복지센터에서 일하고 계신 분께서 공연을 좋게 보시고는 인근의 오산중학교 선생님께 보광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게 연이 되어 학생들에게 연극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지역 극장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그런 활동에 집중하는 게 아주 좋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저희 단원들의 경우 연기 활동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게 당연하거든요. 그래서 극단으로서의 활동을 중시할지, 아니면 지역 극장으로서의 활동에 집중할지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두고 신중하게 고민 중입니다.

그렇다면 ‘이태원’ 하면 어떤 떠오르는 키워드가 연상되나요?

웰컴레코즈 (DJ ANDOW)

다문화, 포용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뭐든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오픈 마인드가 곧 이태원인 것 같아요.

Independent Underground Radio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다소 생소하게 여길 수 있는 분들께 독립 라디오 플랫폼과 SCR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커뮤니티라디오(이하 SCR)는 국내 최초의 언더그라운드 전자 음악 전문 미디어 채널로서 지난 2016년부터 라이브 스트리밍 기반의 콘텐츠들을 제작하고 송출해 왔습니다. 기본적으로 재능 있는 로컬 뮤지션들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에 집중해 왔고요. 나아가서는 세계 각국의 언더그라운드 전자 음악 관련 최신 트렌드를 국내에 소개하기 위한 콘텐츠도 제작해 왔습니다. 독립 출판, 독립 영화 등의 인디펜던트 미디어가 그러하듯 독립 라디오 플랫폼 역시 주류 미디어의 사각지대에 놓인 서브컬처를 독자적인 관점에 따라 조명할 수 있다는 장점과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SCR 역시 테크노, 정글, 드럼&베이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활동 중인 DJ들의 믹스셋을 소개하고 신인 뮤지션을 조명해 왔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오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실까요?

선테일러 (이생로 대표)

해외 각국에서 귀빈들이 방문해 정장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외교부에서 으레 저를 소개해 주거든요. 왜냐면 의사소통이 자유롭다는 점도 있겠지만, 호텔 총지배인까지 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에 접객 매너나 그런 여러 가지 부분을 따라올 수가 없거든요. 그 덕분에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 등 많은 귀빈들의 옷을 맞춰드릴 수 있었어요. 양복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뿌듯하기도 하고, 자부심도 느껴지는 그런 추억들이죠. 그래서 우리 양복점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자부심이 대단해요. 그런 자부심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저 역시 항상 신뢰와 신용을 바탕으로 손님을 대하고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이태원 프리덤’이죠. 이태원은 자유로움을 인정해 주는 동네인 것 같아요.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동네랄까요? 덕분에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일종의 문화가 이태원을 이태원답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는 스토어의 특성상 코로나 시대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웝트샵이 전개하고 있는 활동과 그 방향성이 코로나 전후로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웝트샵 (이석준 대표)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지인 브랜드가 아니면 팝업도 잘 진행하지 않을 정도로 다소 폐쇄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인지 운영 방향의 큰 변화는 없었는데요. 다만, 이벤트를 진행하는 빈도는 조금 더 늘어났습니다. 주변에서 ‘너희는 뭐 좀 해라’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 통에 파티를 비롯한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고요. 아는 동생들이 웝트샵에 놀러 오는 느낌으로 디제잉 파티를 한다거나, 자체적으로는 그런 소소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치를 PDF 서울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걸까요?

PDF 서울 (이승현 대표)

그렇죠. 저도 해외에 나갔을 때 디자인숍, 아트숍 같은 공간에서 좋은 영감을 받았듯이 PDF를 찾아오시는 분들도 그런 경험을 하실 수 있게 해보고 싶었어요.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되는 와중에도 아날로그적 요소를 그리워하는 분들도 많고, 분명 페이퍼 자료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앞서 언급한 물성이 있는 자료의 가치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PDF 서울을 기획하시는 과정에서 다양한 베뉴를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요. 최종적으로 이태원 지역을 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PDF 서울 (이승현 대표)

아무래도 제가 구상하고 있던 공간과 콘텐츠에 부합하는 동네의 분위기, 그리고 적합한 공간 매물을 찾는 게 중요했습니다. 사실 1순위로 생각했던 건 한남동이었는데 임대료가 다소 비싼 편이었고 적합한 공간 매물을 찾기도 어려웠고요. 도산공원 일대, 성수동도 고려했지만 아트북을 메인 콘텐츠로 삼는 편집숍을 운영하기에는 동네의 분위기가 다소 번잡하다 싶더군요. 그때 문득 제가 거주하고 있고 친한 사람도 많고 가장 많이 머무는 이태원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역의 문화적인 성향 역시 결이 맞는다고 생각했고요. 그중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녹사평 일대에서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나 PDF 서울을 열게 되었습니다.

Photo, Design, Fashion 세 가지 요소를 집약한 컨셉이 이색적입니다. PDF 서울은 어떤 공간인가요? 공간을 구성하신 방식과 기획 의도가 궁금합니다.

PDF 서울 (이승현 대표)

PDF 서울은 일차적으로는 책방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오직 책을 판매하기 위해 만든 공간은 아닙니다. 오히려 디자인을 전공한 뒤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해온 제 경력을 집약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고요.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비즈니스화를 염두에 두고 그동안 모아온 아트북을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편집숍이나 디자인 스튜디오로의 확장도 고려하고 있는, 일종의 플랫폼 성격의 공간입니다.

이태원 지역에서 가장 즐겨 찾으시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요?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가장 좋아하는 곳은 클럽 cakeshop입니다. 제 20대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클럽입니다. 이곳은 저뿐만 아니라 소위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을 사랑하는 이들의 터전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데요. 정말 수많은 로컬/해외 아티스트가 이곳을 거쳐갔습니다. 10년이 넘도록 cakeshop이 지켜온 방향성은 서울에서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기에 용감하고 대단한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앞선 질문의 연장선에서 웰컴 레코즈가 음반을 선별하는 기준이나 그것을 소개함에 있어 중시하는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웰컴 레코즈를 론칭하고 운영하게 되신 동기와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웰컴레코즈 (DJ ANDOW)

웰컴 레코즈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바이닐로 플레이하는 DJ의 숫자가 정말 적어서, DJ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음반들을 소개해 보자는 게 출발점이었어요. 근데 아무래도 사업이 확장되면서 지금은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아무래도 저부터가 DJ이기 때문인지 제 취향이 많이 반영되는 건 있어요. 보통 레코드숍을 한다고 하면 록이나 팝 음악 관련 앨범들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웰컴 레코즈는 하우스, 테크노, 소울, 힙합, 디스코 등의 장르 앨범이 주를 이루고 있거든요. 저를 포함해서 함께 운영하는 동료들의 취향이 곧 저희의 선별 기준이기도 합니다.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브컬처는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요?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사회, 문화, 정치적인 측면에서 대중문화가 떠안고 싶지 않아 하는 회색 지대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가렵지만 긁지 못하는 여러 곳에 걸쳐 서브컬처 내 창작자, 커뮤니티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통해 그 갈증과 답답함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다른 분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보광동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 중 하나는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아무래도 월세가 저렴하다는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재개발 대상 지역이기 때문에 집들이 대체로 낡아서 원룸의 경우 30만 원대 월세로 구할 수 있는 방이 있어요. 그런데 동네의 입지는 굉장히 좋아서 강남은 10분 정도면 갈 수 있고, 서울 도심 어디로든 손쉽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이태원이 가깝다는 것 역시 중요한 요인 중 하나겠죠? 아무래도 문화적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활성화된 곳이다 보니 이태원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분들 가운데 보광동에 거주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비롯한 난관 속에 이태원 지역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직접 지역 내에서 활동하고 계신 입장에서 이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PDF 서울 (이승현 대표)

저도 타격이 꽤 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생각보다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PDF 서울은 업종 상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은 측면이 없지 않지만, 주말에는 다시 밤에 차가 막히기 시작했고, 오가는 사람의 숫자도 늘고 택시도 많아지고, 여러모로 상권 자체가 다시 붐비는 분위기입니다.

이른바 ‘중동 붐’으로 기업과 노동자들이 파견되었던 시기를 말씀하시는 거죠?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맞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박정희 정권은 중동 외교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1967년에 정부 차원에서 배려의 일환으로 한국 이슬람교 재단에 서울중앙성원 부지를 희사했습니다. 여기에 이슬람 국가들이 건립 비용을 지원하였고, 1976년에 성원이 개원하게 되었죠. 바로 이 시기쯤 이른바 ‘석유 파동’으로 인해 중동 국가들의 건설 수요가 늘어나면서 한국 기업과 노동자들이 대거 진출한 중동 붐이 일었고요. 이 시기 정부는 성원과의 협력하에 노동자에 대한 이슬람 문화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이를테면 중동 이슬람 국가에 가서 일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일종의 소양 교육이 진행된 것이고요. 메카나 메디나와 같은 성지에 파견되는 노동자들의 경우 이슬람교 입교가 조건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신자 수가 크게 느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0년간의 영업 기간 동안 국내 커피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최근 국내 커피 업계의 동향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인상적인, 혹은 주목할 만한 브랜드 또는 경향성이 있을까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10년 사이에 전반적으로 커피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올라왔고요. 대부분 훌륭한 맛의 커피와 즐기기 좋은 공간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예전에 비해 뾰족한 개성은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실패할 만한 시도를 과감하게 하는 곳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그렇다 보니 여러 카페들이 비슷비슷해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감히 뭐라고 얘기하기가 어려울 만큼 커피 시장이 크게 성장해 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태원 얘기로 넘어가볼까요? 대략 이태원을 언제부터 드나들기 시작하셨나요?

나나영롱킴 (나나영롱킴)

고등학교 때였어요. 저는 부산 출신인데 아무래도 LGBTQ+ 커뮤니티 자체가 서울에 비해 엄청 작다 보니 남자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아저씨 같지만 제가 PC통신 세대여서 천리안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찾다가 서울에 게이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는 걸 들었어요. 그래서 한 번은 친구랑 한번 가볼까 생각해서 밤에 이태원을 가봤는데 정말 길거리에 트랜스젠더 누나들이 오가고, 남자들끼리 부둥켜안고 지나가고, 그런 바이브를 경험하게 된 거죠. 그때 ‘아, 진짜 서울로 와야겠구나’ 결심했고, 동경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 것 같아요.

가구, 오브제, 인테리어를 아우르는 길종상가의 다양한 창작물을 하나로 아울러 정의하긴 쉽지 않지만, 공통적으로 유머러스한 위트가 느껴집니다. 구성원 공통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일까요?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아무래도 주문 제작을 기본으로 삼고 있기도 하고, 저희 팀의 성향상 매번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기보다는 다양한 변화를 주는 걸 선호하는 편입니다. 누가 봐도 길종상가가 만들었을 것 같은 느낌을 제공하면서도, 때론 이게 정말 길종상가의 제작물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정의하기 어려운 느낌을 유지하고자 하는데요. 그래서 그런 인상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앞선 질문과 관련해서 브랜드 또는 상품을 선별하고 제안하는 일종의 큐레이션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계실 것 같습니다. 웝트샵이 브랜드를 엄선하고 소개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웝트샵 (이석준 대표)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같은 옷을 입은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을 고유한 개성이랄까요? 그런 부분을 가장 중시하고 있고요. 못지않게 중요한 건 제가 그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의 여부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NBA를 아트워크적으로 해석해서 조명하는 매거진으로 시작한 ‘franchise’라는 브랜드의 의류를 소개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래픽부터 재질, 색감 모두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워싱된 색감이 특히 인상적이었고요. 다시 말해, 희소성의 관점에서나 디자인적 취향으로나 위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기준을 두루 충족하는 franchise 같은 브랜드와 그 상품을 발굴하고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일련의 테러와 전쟁이 발발했죠.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가장 큰 사건은 9.11 테러였습니다. 그 결과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고요. 한국에서는 자이툰 부대가 평화유지를 위해 파병되었고, 이후에는 김선일 사건이나 샘물 교회 사건 등이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 안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과 부정적인 시선이 모두 생겨났고요.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가리켜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이태원은 끊임없이 타오르고 식고 또 다시 새로운 에너지가 분출되는 곳이기에 지금 한 시점을 두고 속단하기엔 이르며, 아직 좀 더 함께 흘러가며 경험하고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는 보광동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헬카페를 ‘강배전 원두 풍미에 눈을 뜨게 해준 곳’으로 표현했습니다. 헬카페가 지향하는 커피 맛은 무엇인가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헬카페를 오픈할 무렵에는 산미가 두드러지는 스페셜티 커피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저와 동업하는 권요섭 대표 모두 그런 맛이 취향에 맞지 않더군요.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맛을 내기보다는 다른 걸 해보자는 다소 청개구리 같은 심리도 있어서 업계의 주된 흐름과는 다르게 강배전 커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진하고 쓴맛을 좋아하는데, 사실 한국어에서 ‘쓴맛’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잖아요.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맛 사이에서 쓴맛의 밸런스를 적절하게 맞춰주면 묵직하고 기품 있고 진중한 느낌을 낼 수 있거든요. 다시 말해, 헬카페가 지향하는 커피 맛은 진하면서도 복합적인 매력을 지닌 쓴맛입니다.

최근에는 가구나 오브제를 제작하는 가공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계시지만, ‘가상의 상가’ 컨셉은 여전히 신선합니다.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그동안 제가 해왔던 일들이나 지금 하는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돌아보면 가구 브랜드의 범위를 넘어서는 작업 영역에 걸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다양한 작업 분야를 상가 안에 입주한 여러 상점에 빗대어 표현하고자 했고, 길종상가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물론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주변을 걸어보면 예스럽고 조용한 정취가 느껴집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경험한 인근 지역은 어떤 곳이었나요?

마하 한남 (김동현 소장)

일단 이 동네에 온 이유는 단도직입적으로 월세 때문이죠. 저는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는데, 상권이 형성되는 순간 월세가 네다섯 배 뛰거든요. 다시 말해 이곳은 정말 마을이라고 부를 만한 주거 지역입니다. 게다가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곳이라서 오래된 건물이 많아요. 남향으로 한강 조망을 누릴 만한 프리미엄이 있어서 평당 1억 넘는 감정가가 형성되어 있고, 어차피 철거될 집이기 때문에 재개발이 시행되길 기다리며 낡은 집에 살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민분들의 삶은 다소 열악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이 느껴지고 조용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어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습니다.

보광극장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성되었나요? 보광동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창단 멤버들이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상경해서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한 게 보광동이었어요. 남자 셋이 단칸방에 모여 살며 어떤 방식으로 연극 활동을 시작할지 고민했다고 하는데요. 통상 대학로에서 활동을 시작하지만, 만들고 싶은 공연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시도해 보기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때 거주 중이었던 보광동 자체가 흥미로운 동네이기도 하고 직접 무언가를 하기에 이 동네가 적합하겠다 싶어 보광극장을 창단했고요. 이후에 공실로 방치되어 있던 지금의 지하 공간을 알게 되어 실제 극장도 마련했습니다.

원래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선테일러 (이생로 대표)

좋아했죠. 고등학교 다닐 때 저는 교복도 양복점에 가서 맞춰 입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패션에 단순히 관심이 있는 것과 양복점을 운영하는 건 또 다른 문제거든요. 본업이었던 호텔 분야에서는 제가 석사, 박사였지만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건 잘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이제는 40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보니 도사가 됐습니다. 누구든 매장을 방문하시면 곁눈질만 해도 단번에 사이즈를 알 수 있어요.

‘용산01’번 마을버스를 타고 있으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피부색도, 연령대도 다양한 외국인들과 함께 몸을 싣고 계신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역의 대표적인 특색으로 여겨지는 다문화의 면면을 어느 정도로 체감하실 수 있었나요?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인종이 다른 분들도 다들 한국 문화에 익숙해서 마을버스에서 어르신들께 좌석을 양보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요. 길을 걷다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쳐다보면 서로 다른 인종의 아이들이 한국어로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습니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앉아 있었고, 그런 다문화의 면면이 동네에선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웝트샵 (이석준 대표)

크게 바뀐 건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요즘은 이전보다 눈치를 더 많이 보게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원래부터 이태원은 왁자지껄한 게 매력인 동네인데, 가게들이 코로나와 여러 어려운 상황을 겪다 보니 예전처럼 적극적인 영업을 하는 걸 고민하는 눈치랄까요? 확 열었다가 괜히 사고라도 나면 또 언론의 뭇매를 맞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십니다. 근데 원래 이태원은 ‘눈치 안 보는 동네’거든요. 그래서 저는 예전처럼 시선 신경 안 쓰고 문화적으로 더 소란스러워지고, 누구나 즐겁게 놀러 오는 곳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대표님의 해외 생활과 경험이 일종의 모티브로서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위 풍부한 콘텐츠 자산을 지닌 세계 유명 도시들은 다른 도시와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PDF 서울 (이승현 대표)

대체로 콘텐츠 자산이 풍부한 도시들은 다인종, 다문화인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각각의 고유한 문화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형성되는 일종의 문화적 역동성이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도시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관용적인 태도가 인상적인데요. 우리는 모두 환영한다는 그런 태도로부터 창의적인 문화가 발현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 기간 지역에서 거주하고 활동해 오신 입장에서 주한미군, 이슬람 성원으로 대표되는 이국적인 지역성이 이태원 지역의 일상에 미친 영향을 체감하시나요?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우선 주한미군, 이슬람 사원, 대사관 등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게 된 태생적인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먹고 즐기는 문화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태원이 아닌 곳에서 케밥집을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이국적인 펍, LGBTQ를 위한 공간,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댄스 클럽 등 유독 이태원이 지닌 고유한 색채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16년 매장을 오픈하셨으니 어느덧 8년 차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공간을 운영하며 경험한 한남동 일대는 어떤 곳이었나요?

웝트샵 (이석준 대표)

오픈 초기에는 몇몇 카페가 유명한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여성분들이나 커플 단위 방문객이 많았는데요. 방문객 유형이 점차 가족 단위로도 확장되어 나가더군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조금씩 패션의 중심지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꼼데가르송을 비롯해서 저희나 비이커가 제법 오랜 기간 일대를 지킨 패션숍이고요. 안쪽 골목에는 동대문 계열의 디자이너 브랜드 쇼룸도 다수 있거든요. 그래서 점차 쇼핑하러 오는 동네로 변모해 왔어요. 최근에는 빌라를 통으로 개조해서 오픈하는 베이커리나 디자인 쇼룸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 나가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소위 이슬람교에 대한 두려움은 낯섦과 무지로부터 비롯되기도 합니다. 말씀해 주신 굵직한 사건들이 이슬람의 이름 아래 전개된 영향도 있겠고요.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이슬람에 관해 가장 흔히 사용되는 수식어가 ‘오해와 편견’입니다.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종교로써 전 지구적인 이웃 종교로 널리 자리 잡고 있고, 다른 무엇보다도 평화와 평등의 가치를 설파하는 종교입니다. 그런 가치가 어느 국가에서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무슬림이 생겨나고 점차 교세가 확장되는 것이죠. 이러한 교리를 진지하게 탐구한다면 이슬람교는 오히려 유연하고 변화에 적극적인 종교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이태원 지역 자체적으로도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웰컴레코즈 (DJ ANDOW)

무엇보다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인지 공실이 심심찮게 보이거든요. 사실 저희도 매장을 옮길 때 이태원 대로변 역시 고려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들어갈 수가 없었거든요. 저는 이런 모습이 심리적, 문화적인 경직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적인 단면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요.

드랙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아티스트로서 활동과 드랙에 대한 관심 중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궁금합니다.

나나영롱킴 (나나영롱킴)

어렸을 때부터 LGBTQ+로서 성 정체성이 확고하게 잡혀 있던 편이었고, 무언가 화려하게 꾸미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 연장선에서 미술을 전공하다가 경제적으로나 여러모로 힘들어서 포기했죠. 그때 또 무엇을 즐기면서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어린 시절부터 무대에 올라가고 춤추는 걸 좋아했다는 걸 떠올렸어요. 그래서 연기 공부를 시작했고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근데 막상 제가 꿈꾸던 캠퍼스 라이프가 아닌 거예요. 배우는 것도 그렇게 와닿지 않았고, 무엇보다 남녀의 사랑에 대한 연기를 할 때 아무래도 몰입할 수 없었거든요. 연기도 내 길이 아니구나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헤드윅, 프리실라, 킹키부츠 같은 LGBTQ+ 관련 영화를 보면서 드랙퀸을 알게 되었고 매료되었어요. 생각해 보면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와 메이크업을 통해 미술과 연기 양쪽 모두를 복합적으로 해낼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서적을 비롯한 물품의 수집에 있어 중시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PDF 서울 (이승현 대표)

원론적인 답변이지만, 아무래도 제 취향에 맞는 물품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취향이 원래부터 굳게 형성되어 있던 건 아니고요. 20대부터 30대까지를 거쳐오면서 서서히 발견해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10년 동안 모아온 책이지만 그때그때 어떤 직종에 있었는지, 혹은 어떤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서서히 확장하고 정제하며 취향을 찾아간 거죠. 그 결과물이 지금의 PDF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큰 영감과 영향을 준 몇몇 아티스트들이 있었습니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앤디 워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는데요. 문화의 흐름을 만들고 아티스트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팩토리를 운영하는 등의 활동 방식을 동경했던 것 같아요. 형식적이지 않은 디자인에 여러 가지 아트워크 작업을 해 온 것도 멋지다고 생각하고요. 사진 분야에선 헬무트 뉴튼 작가를 제일 좋아합니다. 작업물을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을 받았달까요? 베를린에 개인 뮤지엄이 있는데 전시를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오랜 목욕탕 건물을 리뉴얼하여 지금의 마하 한남을 완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마하 한남 (김동현 소장)

우연히 인근을 지나다가 화재로 전소된 뒤 방치되어 있던 건물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건물에서 밖을 보면 지금과 같은 멋진 한강 풍경이 보일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반년 동안 건물주를 설득한 다음 추가로 반년간 공사를 진행해 지금의 마하 한남을 완성했습니다. 통상 인테리어 프로젝트는 1~2개월이면 마무리할 수 있지만, 훼손이 심한 건물에 대한 보수가 필요했고 다른 프로젝트와 병행하다 보니 기간이 길어졌습니다. 사실 목욕탕 모델링에 대한 졸업 작품을 출품했을 정도로 저는 동네 사랑방으로서 목욕탕이 지닌 기능적인 요소와 구조적인 형태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가정마다 욕조가 있지 않았던 1980~90년대에는 주말마다 온 가족이 목욕탕을 가는 게 일종의 주간 행사였죠. 보통 1층은 슈퍼마켓, 2층은 여탕, 3층은 남탕, 4층은 주인집인 구조였는데요. 이 건물 역시 마찬가지여서 마하 한남이 있는 4층은 원래 목욕탕 주인 가족의 집이었습니다.

심미적인 아름다움 이외에도 실용적인 기능성을 고려하신 부분이 엿보입니다. 길종상가가 주문에 응하고 무언가를 제작할 때 중시하는 포인트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일정과 예산, 장소, 세 가지 요소를 두고 주문자와 소통해 나가면서 현실적인 협업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 걸 가장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의뢰가 보통 3~4개월 전에 연락이 오기 때문에 저희 내부 스케줄을 고려하면 소재, 가공 방식 등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제작 가능한 방안을 제안드릴 수밖에 없는데요. 여기에 더해 컨셉에 대한 상호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주어진 예산안 내에서 실현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중앙성원이 앞으로 이태원 지역에서 어떤 곳으로 남기를 바라고 계신지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성원 주변이 이슬람 문화 명소로서 자리 잡는 건 유흥 위주의 이태원에 또 다른 요소를 더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앞으로도 국내에 거주 중이거나 방문하는 무슬림들을 위한 보금자리로써 제 역할을 다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성원 인근 지역이 재개발을 추진 중인데요. 언젠가 이 구역이 정비되고 나더라도 다소 낡은 모습의 성원이 기존처럼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한국의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중추적인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선 질문과 관련해서 ‘나나’와 ‘영롱킴’은 일종의 페르소나로 이해해도 되는 걸까요? 각각의 캐릭터와 자아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나나영롱킴 (나나영롱킴)

저는 나나도 영롱킴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나일 때도 성격이 이렇고, 영롱일 때도 성격이 이래요. 말투도 같고요. 다시 말해, 저는 사실 페르소나가 없는 드랙퀸 중 한 명이에요. 물론 페르소나를 가진 드랙퀸 친구들도 굉장히 많아요. 평소에는 의기소침하고 소심해서 말도 못 걸고 이러는데, 드랙만 하면 동작과 목소리가 커지고 자신감을 갖는 친구들이 있죠. 그런 페르소나 자체가 재밌어서 드랙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반면 저는 이러나저러나 똑같은 성격이기 때문에 드랙 네임에 모든 이름을 넣은 거예요. ‘나나영롱킴’으로요.

타 인터뷰에서 해방촌으로 이전하실 때 가장 중요했던 건 공간의 컨디션이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입지가 변경되면 동네 자체의 무드나 오가는 분들의 유형 및 특성 역시 변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와 관련하여 체감하신 변화가 있으신가요?

웰컴레코즈 (DJ ANDOW)

압구정로데오 방면에 있을 때는 인근에 스투시(STUSSY)나 미스치프(MISCHIEF)와 같은 유명 매장이 있어서 그 공간을 목적지 삼아 인근을 방문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이라 관광객분들이 오가는 빈도도 높았고요. 그런데 해방촌으로 옮기고 나서는 방문하시는 분들의 유형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관광객분들보다는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나 레코드를 좋아해서 오시는 분들의 비중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언더그라운드 전자 음악을 콘텐츠로 삼는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장소성을 지닌 클럽과 라디오 스테이션 사이에 뚜렷한 차이점도 존재할 것 같습니다. 라디오 스테이션을 통한 활동과 클럽 베뉴의 활동 간에는 어떤 차이점이 존재할까요?

앞선 답변과 일부 동일한 맥락인데요. 방문객을 상대하는 클럽 베뉴들은 부득이하게 대중적인 인기 장르 위주로 음악을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디펜던트 라디오는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장르를 자유롭게 선곡할 수 있죠. 다른 한편으로 SCR은 훌륭한 스튜디오 프로듀서진을 보유하고 있고 상당한 퀄리티의 라이브 연주 콘텐츠, 그중에서도 생소한 장르의 라이브 연주를 선보이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단순히 어떤 음악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트렌드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음악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을 나누고자 합니다. 클럽에서는 현실적인 여건상 그렇게 하기 어렵지만, SCR에서는 모든 게 가능합니다.

사진, 디자인, 패션은 분명 연관된 부분도 있지만, 각각 별개의 특성과 개성을 지닌 장르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세 가지 분야에 대한 대표님의 취향은 어떤 과정과 계기로 형성되었을까요?

PDF 서울 (이승현 대표)

원래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서 일하다가 취미 겸 부업으로 사진 촬영을 시작했고요. 패션 역시도 디자인, 사진과 관계된 분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연관성이 있는 업종이고, 상호 보완적인 업종이기도 해서 모아온 컬렉션도 해당 분야에 집중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태원의 특성상 코로나 기간 수많은 공간들이 영업을 중단하거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력이 가득했던 많은 공간들을 이젠 볼 수 없게 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적어도 그런 공간들에서 엿볼 수 있었던 이국적이면서도 개성이 뚜렷한 면면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미군 기지 공원화, 지역 재개발 등 수많은 변수를 앞두고 있지만 적어도 프랜차이즈 점포 가득한 여느 동네처럼 평범해지진 않았으면 합니다.

VISLA FM, QUEST 등 라디오와 공간으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계십니다. 각각의 미디어와 채널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VISLA FM은 지역적인 측면에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서울의 음악적인 색깔을 더 다채롭게 하고자 만든 플랫폼입니다. 디지털 피드에 떠도는 수많은 아티스트의 이름,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의 볼륨을 더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물론 이 도시의 음악적인 흐름 사이에 VISLA FM이라는 주파수가 존재하길 바랍니다. QUEST는 사무실을 옮길 때 재밌게 생긴 공간 구조에 매력을 느껴 갑작스레 떠올린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곳은 손님과 친구들을 맞는 VISLA만의 방식이자 응접실의 개념인데 작은 바(Bar), 쉼터였으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VISLA FM 스튜디오와 QUEST로 운영 중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전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겪는 문제인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얼마나 자유롭고 조화롭게 지역이 자리잡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무렵 헬카페 로스터즈를 방문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단골 많은 동네 카페’의 분위기가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경험하신 보광동, 그리고 이태원은 어떤 동네였나요? 분위기, 일화 등을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헬카페 (임성은 대표)

이태원은 역시 다양성이 있는 동네죠. 보광동만 해도 서울 중심권에서 이렇게 집값이 저렴한 동네가 또 없다 싶은데, 그런가 하면 1km 권역 안에는 고급 주택가가 공존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군 부대 철수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몰렸고요. 그러다 보니 문화적으로나 소득 수준으로나 굉장히 많은 것들이 뒤섞인 독특한 동네였어요. 옷차림새도 그렇고, 사람들의 태도도 그렇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요. 특히 보광동에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금전적인 여유가 부족한 젊은 청년분들이 많이 살았거든요.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다양한 서브 컬처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아무래도 그분들이 인근에서 취향에 맞는 공간들을 찾아 소비하잖아요. 그런 분들 덕분에 저희가 먹고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광동에 스튜디오를 두고 활동하시다가 현 위치인 녹사평대로 인근으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이태원 일대에 머무르며 활동해 오셨습니다. 스튜디오 이전을 결정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원래 SCR 스튜디오는 우사단길 끝자락에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규모의 지하 공간이었는데 아무래도 습도가 높아서 장비 고장이 잦기도 했고, 콘텐츠 촬영 이외에는 다른 어떤 이벤트를 진행하기 어려웠어요. 이를테면 로컬 아티스트가 EP를 내는 등의 활동 이슈가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팝업 이벤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접근성으로 보나 공간 컨디션으로 보나 제약이 많았던 거죠. 그래서 지금의 녹사평 스튜디오로 이전을 결정하게 되었고요. 옮긴 이후에는 라디오 스튜디오 본연의 기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언더그라운드씬의 DJ를 비롯한 뮤지션들과 활발하게 교류해 오셨습니다. 몸소 경험하신 이른바 서브컬처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볼레로 (손기정 대표)

일단 볼레로가 중시하는 ‘음악’, 그중에서도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초점을 맞춰보면, 제게 있어 음악-클럽 문화 자체가 인생의 필수 요소랄까요? 구체적으로 음악은 일상 속 해소의 매개체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평일에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주말에 좋은 음악을 들으러 볼레로와 같은 공간을 방문하고, 이 공간에서 좋은 기억을 얻고, 다음 한 주를 힘내서 시작하곤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음악을 곁에 두는 건 곧 일상을 유지하게끔 하는 동력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 뮤직바나 클럽을 비롯한 음악 기반 커뮤니티 공간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볼레로 (손기정 대표)

사실 음악을 즐기는 공간 대부분은 갓 20대가 된 분들이 주축이 되기 마련인데요. 코로나 기간에 20대를 맞이한 분들은 이런 공간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간을 어떻게 즐겨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고, 그래서인지 씬 자체의 역동성이 이전에 비해 다소 약해진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간 자체의 문제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이전 활발하게 영업하던 공간들이 2년간 제대로 영업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연이어 폐업했죠. 이후 새로 문을 연 공간들이 많은데, 요즘은 그런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다소 불분명한 느낌이에요. 심혈을 기울여서 선곡한 음악을 틀고, 좋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파티를 비롯해 흥미로운 기획을 꾸준히 선보여야만 쌓아 나갈 수 있는 공간 고유의 정체성이 아직은 전반적으로 부족한 느낌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가리켜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 지역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웝트샵 (이석준 대표)

이태원 내에서도 세부적으로는 골목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이태원에 오래 있던 사람들은 해밀톤호텔 주변은 잘 방문하지 않는 편이고요. 오히려 그 일대는 외부에서 이태원을 놀러 오는 분들의 비중이 높죠. 오히려 이태원 토박이라고 할만한 분들은 소방서 뒷골목과 퀴논길 방면을 더 많이 오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외부에서는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이태원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코로나 전후로 크게 바뀐 게 없어요. 오히려 이태원의 위기라는 일종의 프레임은 외부에서 방문하시는 분들, 혹은 외부에서 지역을 조명하는 시선에 의해 생겨난 것에 가깝죠. 물론 조금의 변화는 있지만 결국 ‘이태원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코로나 초기 이태원 클럽들이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나나 님의 활동 역시 타격이 컸을 것 같아요.

나나영롱킴 (나나영롱킴)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 게 2020년 5월 5일이었어요. 왜냐면 제가 그때 어린이날 행사로 부산에 공연 참석차 가 있었거든요. 부산에서 일을 마치고 서울 올라와서 쉬고 있는데, 클럽 집단 감염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거예요. 저는 그날 서울에 있지도 않았고 그 클럽에 있지도 않았는데 단순히 활동하던 베뉴에서 사건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DM을 300~400개 정도 받았죠. 동성애자들, 게이들, 이태원이 문제라고요. 심지어 LGBTQ+와 무관한 이태원 압사 사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로 인해 공황이 와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한번 닫은 적이 있어요. 그 뒤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무서웠고, 괜히 삿대질 받을 것 같고, 심지어 테러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지만, 불행 중 다행이랄까 코로나가 한창이니까 실내에 머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의기소침하고 무너져야 하지?’ 싶어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