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종상가 박길종 대표는 보광동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헬카페를 ‘강배전 원두 풍미에 눈을 뜨게 해준 곳’으로 표현했습니다. 헬카페가 지향하는 커피 맛은 무엇인가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헬카페를 오픈할 무렵에는 산미가 두드러지는 스페셜티 커피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저와 동업하는 권요섭 대표 모두 그런 맛이 취향에 맞지 않더군요.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맛을 내기보다는 다른 걸 해보자는 다소 청개구리 같은 심리도 있어서 업계의 주된 흐름과는 다르게 강배전 커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진하고 쓴맛을 좋아하는데, 사실 한국어에서 ‘쓴맛’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잖아요.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맛 사이에서 쓴맛의 밸런스를 적절하게 맞춰주면 묵직하고 기품 있고 진중한 느낌을 낼 수 있거든요. 다시 말해, 헬카페가 지향하는 커피 맛은 진하면서도 복합적인 매력을 지닌 쓴맛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온전히 뒤로 하고 맞이한 사실상 첫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VISLA가 전개하고 있는 활동과 그 방향성이 코로나 전후로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온라인 상의 작업 이외에도 오프라인 파티나 이벤트를 기획해 왔는데, 지난 몇 년간 팬데믹으로 중단된 프로젝트가 많아 답답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과 스킨십할 수 있는 일들을 꾸미고 있습니다. 해외 교류도 멈춰있던 상황이라 향후 더 많은 아시아 나라들, 유럽과 미국까지도 VISLA가 닿을 수 있도록 준비해보려 합니다.

2023년도 어느덧 절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VISLA의 2023년 상반기 근황이 궁금합니다.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상반기에는 VISLA FM을 런칭하고 정착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매거진을 새로운 분위기로 쇄신하는 데 에너지를 쏟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중앙성원이 앞으로 이태원 지역에서 어떤 곳으로 남기를 바라고 계신지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성원 주변이 이슬람 문화 명소로서 자리 잡는 건 유흥 위주의 이태원에 또 다른 요소를 더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앞으로도 국내에 거주 중이거나 방문하는 무슬림들을 위한 보금자리로써 제 역할을 다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성원 인근 지역이 재개발을 추진 중인데요. 언젠가 이 구역이 정비되고 나더라도 다소 낡은 모습의 성원이 기존처럼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한국의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중추적인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해를 통한 공존을 도모하는 일종의 종교적 성숙기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1990년대 일하기 위해 정착한 무슬림들의 한국 생활이 10년 차, 20년 차로 접어드는 시기이기도 하잖아요. 그 무슬림들은 한국 국적을 받기도 하고, 한국 여성과 결혼하기도 하고,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모범적인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3세대에 해당하는 자녀들 역시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춘 채 문화를 체득했고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슬람교와 무슬림 모두 한국 사회에 동화되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가리켜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이태원은 끊임없이 타오르고 식고 또 다시 새로운 에너지가 분출되는 곳이기에 지금 한 시점을 두고 속단하기엔 이르며, 아직 좀 더 함께 흘러가며 경험하고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보광동에서 느끼고 있는 이런 다양성을 이태원 역시 가지고 있는데, 그런 면면이 더욱 깊게 뿌리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역량을 키우고 각자의 생업이나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공공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적절하게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태원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정말 많은 이들 사이에서 제법 탄탄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거든요. 이러한 현황에 관심을 갖고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졌으면 해요. 그와는 별개로 저희 보광극장 역시 지역 예술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고요.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웝트샵 (이석준 대표)

크게 바뀐 건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요즘은 이전보다 눈치를 더 많이 보게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원래부터 이태원은 왁자지껄한 게 매력인 동네인데, 가게들이 코로나와 여러 어려운 상황을 겪다 보니 예전처럼 적극적인 영업을 하는 걸 고민하는 눈치랄까요? 확 열었다가 괜히 사고라도 나면 또 언론의 뭇매를 맞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십니다. 근데 원래 이태원은 ‘눈치 안 보는 동네’거든요. 그래서 저는 예전처럼 시선 신경 안 쓰고 문화적으로 더 소란스러워지고, 누구나 즐겁게 놀러 오는 곳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건축가의 관점에서 코로나 이후 체감하고 계신 공간 이용 패턴의 변화가 있을까요?

마하 한남 (김동현 소장)

제가 무언가를 예약제로 이용하는 걸 싫어하는 편인데,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원래는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들도 예약 시스템을 갖춘다거나 인원 제한 등을 두고 운영하기 시작했잖아요. 보이지 않는 한 겹의 절차가 추가된 건데 그 장점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떤 공간이든 특별한 절차 없이 오픈해 두면 공간 자체를 경험할 수 있는 물리적인 인원수는 크게 늘어나겠지만, 질적으로 좋은 경험을 누리고 가는 숫자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공간을 온전하게 즐기도록 하는 운영 관점에서나 안전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일종의 절차를 두는 것에 대해 이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헬카페 운영 이전부터 바리스타로 오랜 경력을 갖고 계셨습니다. 본인만의 카페를 오픈하겠다 결심하신 계기나 과정이 궁금합니다.

헬카페 (임성은 대표)

사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헬카페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막연히 언젠가 제 매장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고, 지금 동업하는 권요섭 대표와 술 마시면서 그런 얘기를 몇 번 나누곤 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축구를 하다가 큰 부상을 입는 바람에 관리자로 일하던 곳에서 퇴직하고 부득이하게 쉬게 됐어요. 재활을 마치고는 다시 취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관리자로 일하면서 현장에서는 멀어지는 느낌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던 차였거든요. 그래서 권요섭 대표에게 이참에 한번 직접 카페를 차려보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했고, 그렇게 헬카페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는 스토어의 특성상 코로나 시대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웝트샵이 전개하고 있는 활동과 그 방향성이 코로나 전후로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웝트샵 (이석준 대표)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지인 브랜드가 아니면 팝업도 잘 진행하지 않을 정도로 다소 폐쇄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인지 운영 방향의 큰 변화는 없었는데요. 다만, 이벤트를 진행하는 빈도는 조금 더 늘어났습니다. 주변에서 ‘너희는 뭐 좀 해라’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 통에 파티를 비롯한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고요. 아는 동생들이 웝트샵에 놀러 오는 느낌으로 디제잉 파티를 한다거나, 자체적으로는 그런 소소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VISLA를 접했을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생소하지만, 독특하고 매력적인 온갖 문화’를 알아가는 충격과 재미를 느꼈습니다. 통칭 서브컬처에 대한 취향과 관심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요?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형을 통해 어깨 너머로 듣고 보던 해외 뮤직비디오와 음악에서부터 제 취향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단서들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준 문화는 아무래도 힙합이었습니다. 당시의 힙합 음악과 문화는 대중가요와는 좀 다르게 어딘지 음침하고 어둡고 반항적인 구석들이 많았거든요. 이후로 많은 문화를 경험했지만 힙합을 빼고서 제 취향을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주로 온라인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2년 동안의 코로나 사태는 역시 녹록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SCR이 전개하는 다양한 활동과 그 방향성이 코로나 전후로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우사단 스튜디오에서 지금의 녹사평 스튜디오로 이전하자마자 코로나 유행이 시작되었거든요. 그렇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코로나 기간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금전적으로는 계속 어려웠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말씀드리는 건 아니고요. (웃음) 당시 클럽을 비롯한 오프라인 공간들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에 SCR과 같은 채널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활동이 집중됐거든요. 그래서 그 기간 동안에는 클럽 파티의 느낌을 낼 수 있는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기도 했는데, 엔드 코로나를 맞아서 페스티벌을 비롯해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앞선 질문과 관련해서 ‘나나’와 ‘영롱킴’은 일종의 페르소나로 이해해도 되는 걸까요? 각각의 캐릭터와 자아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나나영롱킴 (나나영롱킴)

저는 나나도 영롱킴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나일 때도 성격이 이렇고, 영롱일 때도 성격이 이래요. 말투도 같고요. 다시 말해, 저는 사실 페르소나가 없는 드랙퀸 중 한 명이에요. 물론 페르소나를 가진 드랙퀸 친구들도 굉장히 많아요. 평소에는 의기소침하고 소심해서 말도 못 걸고 이러는데, 드랙만 하면 동작과 목소리가 커지고 자신감을 갖는 친구들이 있죠. 그런 페르소나 자체가 재밌어서 드랙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반면 저는 이러나저러나 똑같은 성격이기 때문에 드랙 네임에 모든 이름을 넣은 거예요. ‘나나영롱킴’으로요.

최근에는 가구나 오브제를 제작하는 가공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계시지만, ‘가상의 상가’ 컨셉은 여전히 신선합니다.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그동안 제가 해왔던 일들이나 지금 하는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돌아보면 가구 브랜드의 범위를 넘어서는 작업 영역에 걸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다양한 작업 분야를 상가 안에 입주한 여러 상점에 빗대어 표현하고자 했고, 길종상가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물론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이태원과 처음 연을 맺게 해준 그 공간은 어떤 곳이었나요?

울프소셜클럽 (김진아 대표)

맥파이 브루잉을 알고 난 이후로 이태원을 드나들게 되었죠. 그전에는 홍대에서 대학 생활을 한 뒤로 10년 넘게 주거와 업무 모든 걸 강남에서만 해왔기 때문에 이태원과는 접점이 없었는데요. 2012년경 친구와 함께 맥파이를 처음 방문했을 때 뭔가 새로운 대안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뻤어요. 그러면서 동네 자체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고, 아예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맥파이 친구들과 친해져서 브랜딩이나 제품 네이밍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국내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에서 이태원이란 지역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웰컴레코즈 (DJ ANDOW)

요즘은 다소 부침이 있지만, 다양한 음악과 다양한 문화가 포용되는 곳. 한국에서 거의 유일한 곳 아닐까요?

서울중앙성원은 어느덧 설립 50주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국 내 이슬람교의 역사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이슬람 문화권과의 교류는 고대 국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만, 한국 내 이슬람교 역사에 초점을 맞춰보자면 보통 6.25 전쟁을 기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참전한 16개국 UN군 가운데 터키군이 있었고요. 전쟁 중에 직접적인 선교를 하진 않더라도 이슬람 신앙에 기반을 둔 일상적인 종교 활동을 했겠죠? 그걸 계기로 한국 최초의 입교자들이 생겨났는데 그걸 이슬람교 전파가 시작된 일종의 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1970년대까지는 적극적인 선교 활동이 이뤄지지 않던 와중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로 중동 외교에 임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이슬람교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하 한남은 마치 사적인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기획하신 의도와 신경 쓰신 부분이 궁금합니다.

마하 한남 (김동현 소장)

들어왔을 때 카페에 온 느낌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건축가의 서재’라는 기본 컨셉 역시 일맥상통하죠. 그래서 안방, 거실, 주방의 원래 성격을 배치된 가구를 통해 살려보고자 했습니다. 아일랜드 바가 설치된 곳은 원래 주방이었고, 안방과 거실이었던 구역에도 각각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가구들을 배치했죠. 보통 카페나 식당에서는 테이블과 의자 세트를 반복 배치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 반대급부로 더욱 다양한 가구들이 조화롭게 있으면 상업적인 느낌보다는 안락함을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헬카페 로스터즈는 보광동에 자리를 잡았는데요. 첫 매장을 오픈하는 동네로 보광동을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울러 이후 타 매장 역시도 모두 용산구 일대에 선보이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당시 카페 하면 홍대였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동업자도 홍대에서만 30년 가까이 살았는데, 상권이 포화상태이기도 했고 그런 곳에서 우리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가 다소 의문이었어요. 그러면 다른 동네는 어디가 적합할까 싶었는데, 저희가 술 마시려고 이태원을 종종 드나들 때였거든요. 이태원이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적당한 공간을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헬카페 로스터즈 자리가 보증금과 월세 모두 부담이 없어서 보광동에 첫 매장을 내게 되었고요. 이후에 용산구 일대에 매장을 낸 이유도 단순했습니다. 다른 동네를 알아보다가도 굳이 먼 곳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군요. 매장 관리나 직원 교육이 편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나중 일이었고요.

앞선 질문과 관련해서 VISLA가 조명하는 서브컬처 콘텐츠의 공통된 특질이 있을까요?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독립적인(Independent) / 로컬(Local), 이 두 가지로부터 VISLA의 방향성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가구, 오브제, 인테리어를 아우르는 길종상가의 다양한 창작물을 하나로 아울러 정의하긴 쉽지 않지만, 공통적으로 유머러스한 위트가 느껴집니다. 구성원 공통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일까요?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아무래도 주문 제작을 기본으로 삼고 있기도 하고, 저희 팀의 성향상 매번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기보다는 다양한 변화를 주는 걸 선호하는 편입니다. 누가 봐도 길종상가가 만들었을 것 같은 느낌을 제공하면서도, 때론 이게 정말 길종상가의 제작물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정의하기 어려운 느낌을 유지하고자 하는데요. 그래서 그런 인상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PDF 서울이 문을 연 이후로 어느덧 반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직접 공간을 운영하며 경험하신 이태원은 어떤 동네였나요?

PDF 서울 (이승현 대표)

공간을 운영하면서 생각이 바뀐 부분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예상한 대로 한국 사람만큼 외국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고, 20대 초중반의 소위 힙스터분들도 많이 방문하고 계십니다. 원래부터 이태원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등의 이미지를 그대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태원은 성, 종교, 문화적 소수자들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기반을 두고 활동해 온 지역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대표님께서는 이태원 권역의 지역적 의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울프소셜클럽 (김진아 대표)

이방인들의 고향 같은 동네죠. 저도 서울 사람이 아니라 지방에서 상경해 대학에 들어가고 일해왔던 사람이라서 언제나 이방인으로 살아왔는데요. 아무리 강남에서 오래 지내도 지역에서 환영받는다는 감정이나 소속감을 느끼긴 어려웠어요. 서울은 항상 누군가를 밀어낼 준비가 돼 있는 도시이긴 하지만, 강남은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니까요. 그래서 이태원으로 왔을 때 이방인들이 모여 서로를 조금 더 챙겨주고 관심을 갖는 모습들이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이곳에 찾아오게 되었고, 나아가 여기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처음 사업을 시작하신 2013년 무렵과 비교했을 때 현재는 스트리트 패션과 문화의 저변이 점차 확장되는 추세인 듯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웝트샵의 관점에서 최근 씬의 동향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웝트샵 (이석준 대표)

대체로 이런 문화를 향유하는 개개인의 취향과 스타일이 굉장히 확고해진 것 같습니다. 디테일 요소가 많이 들어간 옷들도 인기를 모으고 있고, 신발도 어글리 슈즈와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도 나름의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말이죠.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에서 헤리티지가 있는 제품을 재출시하더라도 어느 정도 연령대가 있는 분들 사이에서는 화제를 모으지만, 결국 솔드아웃되지 않는 사례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만큼 취향이 뚜렷하다는 거겠죠? 다만, 너무 새로운 것만 좇는 양상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최근 몇 년간 이태원은 코로나를 비롯해 여러 어려운 상황들을 겪어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역의 상황에 대해 들으신 바 또는 체감하시는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사실 저는 주로 성원 안에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뉴스에서 접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듣거나 체감하는 바가 있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근에 정착해 생업에 종사하는 무슬림 가운데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코로나가 종식되고 조금 숨통이 트일 만할 무렵 큰 사고가 있었고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견뎌내고 있는 것 같고요. 아무래도 종교의 근원적인 역할 자체가 예배하러 와서 축복을 나누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힘겨운 상황과 별개로 밝은 모습으로 예배에 임하고 가는 모습을 볼 때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이태원 지역 자체적으로도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웰컴레코즈 (DJ ANDOW)

무엇보다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인지 공실이 심심찮게 보이거든요. 사실 저희도 매장을 옮길 때 이태원 대로변 역시 고려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들어갈 수가 없었거든요. 저는 이런 모습이 심리적, 문화적인 경직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적인 단면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요.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가리켜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 지역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웝트샵 (이석준 대표)

이태원 내에서도 세부적으로는 골목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이태원에 오래 있던 사람들은 해밀톤호텔 주변은 잘 방문하지 않는 편이고요. 오히려 그 일대는 외부에서 이태원을 놀러 오는 분들의 비중이 높죠. 오히려 이태원 토박이라고 할만한 분들은 소방서 뒷골목과 퀴논길 방면을 더 많이 오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외부에서는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이태원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코로나 전후로 크게 바뀐 게 없어요. 오히려 이태원의 위기라는 일종의 프레임은 외부에서 방문하시는 분들, 혹은 외부에서 지역을 조명하는 시선에 의해 생겨난 것에 가깝죠. 물론 조금의 변화는 있지만 결국 ‘이태원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볼레로의 무드는 클래식 바에 비하면 비교적 산뜻한 느낌이고, 기존의 클럽에 비하면 어느 정도 드레스업이 필요한 듯한 느낌입니다. 지금의 공간을 구성하며 중시하신 부분, 아울러 방문객이 어떤 방향으로 공간을 누리길 희망하셨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볼레로 (손기정 대표)

지방 출신으로 처음 상경해서 일했던 곳이 클래식 바였는데요. 그때 느꼈던 특유의 중후한 분위기와 문화를 동경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언더그라운드 느낌이 물씬 나는 이태원 클럽들의 매력에 심취했고요. 앞서 언급한 클래식 바와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분위기는 상반되는 편이지만, 바로 그 대비되는 개성과 매력에 모두 이끌렸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상반된 두 가지 성향이 결국 볼레로의 톤 앤 매너를 결정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은 다소 클래식한 느낌이지만 언더그라운드적인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요소는 음악과 오시는 손님들이 채워줄 것으로 판단했거든요. 결과적으로 클래식한 디자인을 지향하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소위 이슬람교에 대한 두려움은 낯섦과 무지로부터 비롯되기도 합니다. 말씀해 주신 굵직한 사건들이 이슬람의 이름 아래 전개된 영향도 있겠고요.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이슬람에 관해 가장 흔히 사용되는 수식어가 ‘오해와 편견’입니다.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종교로써 전 지구적인 이웃 종교로 널리 자리 잡고 있고, 다른 무엇보다도 평화와 평등의 가치를 설파하는 종교입니다. 그런 가치가 어느 국가에서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무슬림이 생겨나고 점차 교세가 확장되는 것이죠. 이러한 교리를 진지하게 탐구한다면 이슬람교는 오히려 유연하고 변화에 적극적인 종교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PDF 서울을 기획하시는 과정에서 다양한 베뉴를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요. 최종적으로 이태원 지역을 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PDF 서울 (이승현 대표)

아무래도 제가 구상하고 있던 공간과 콘텐츠에 부합하는 동네의 분위기, 그리고 적합한 공간 매물을 찾는 게 중요했습니다. 사실 1순위로 생각했던 건 한남동이었는데 임대료가 다소 비싼 편이었고 적합한 공간 매물을 찾기도 어려웠고요. 도산공원 일대, 성수동도 고려했지만 아트북을 메인 콘텐츠로 삼는 편집숍을 운영하기에는 동네의 분위기가 다소 번잡하다 싶더군요. 그때 문득 제가 거주하고 있고 친한 사람도 많고 가장 많이 머무는 이태원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역의 문화적인 성향 역시 결이 맞는다고 생각했고요. 그중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녹사평 일대에서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나 PDF 서울을 열게 되었습니다.

앞선 질문에서 말씀해 주신 이태원 지역의 특성이 웝트샵 위치를 선정할 때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웝트샵 (이석준 대표)

사실 이 공간에 자리 잡은 과정은 지역 특성과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된 건 아니었습니다. 웝트샵을 운영하기 전 다른 일을 할 때 이태원을 자주 드나드니 먼저 한남동에 사무실을 구했는데요. 한 1년 정도 지금의 웝트샵 자리가 비어있는 거예요. 근데 전면이 널찍하게 트여 있고 구조적으로도 괜찮아 보여서 관심이 갔고 결국 공간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남동이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였던 것 역시 마음에 들었고요.

로컬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오신 DJ의 관점에서 최근 클럽씬 또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의 동향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인상적인, 혹은 주목할 만한 콘텐츠 또는 경향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웰컴레코즈 (DJ ANDOW)

클럽 씬이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부터 양적으로는 크게 팽창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 요즘 재미가 없다고 느끼던 차였어요. 예전에는 이태원만 하더라도 케이크샵(Cakeshop)에서는 언더그라운드 성향의 진보적인 음악을 기대할 수 있었고, 소프(Soap)에는 특유의 프렌치 감성이 있었고, 트리피(Trippy)는 몽환적인 감성이 가득했죠. 이태원에 위치한 어떤 클럽에 가더라도 고유한 색채가 뚜렷했던 거죠. 그런데 요즘은 공간 수는 늘어났는데 딱 두 장르밖에 없어요. 힙합 아니면 테크노. 이런 흐름이 이태원이든, 압구정이든, 홍대든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상업적인 클럽이 아니라면 성공할 수가 없다는 일종의 공식이 생겨버리니 다채로운 개성에서 얻는 재미는 사라져 가고 있는 거죠.

보광동에 스튜디오를 두고 활동하시다가 현 위치인 녹사평대로 인근으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이태원 일대에 머무르며 활동해 오셨습니다. 스튜디오 이전을 결정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원래 SCR 스튜디오는 우사단길 끝자락에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규모의 지하 공간이었는데 아무래도 습도가 높아서 장비 고장이 잦기도 했고, 콘텐츠 촬영 이외에는 다른 어떤 이벤트를 진행하기 어려웠어요. 이를테면 로컬 아티스트가 EP를 내는 등의 활동 이슈가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팝업 이벤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접근성으로 보나 공간 컨디션으로 보나 제약이 많았던 거죠. 그래서 지금의 녹사평 스튜디오로 이전을 결정하게 되었고요. 옮긴 이후에는 라디오 스튜디오 본연의 기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오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실까요?

선테일러 (이생로 대표)

해외 각국에서 귀빈들이 방문해 정장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외교부에서 으레 저를 소개해 주거든요. 왜냐면 의사소통이 자유롭다는 점도 있겠지만, 호텔 총지배인까지 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에 접객 매너나 그런 여러 가지 부분을 따라올 수가 없거든요. 그 덕분에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 등 많은 귀빈들의 옷을 맞춰드릴 수 있었어요. 양복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뿌듯하기도 하고, 자부심도 느껴지는 그런 추억들이죠. 그래서 우리 양복점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자부심이 대단해요. 그런 자부심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저 역시 항상 신뢰와 신용을 바탕으로 손님을 대하고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스트릿 컬처, 그중에서도 인디펜던트한 성향의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오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웝트샵 (이석준 대표)

중학생 시절부터 친구들이 패션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이 신은 신발과 입은 옷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트릿 패션과 그 문화를 체득한 것 같아요. 스투시를 처음 알고 입었던 게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고, 나이키를 처음 신은 건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죠. 또, 당시에 일본 밴드 ‘드래곤 애쉬(Dragon Ash)’를 좋아해서 소위 니뽄 스타일로 불리던 그들의 패션을 눈여겨보기도 했습니다. 인디펜던트한 성향의 브랜드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지인들의 영향이 큽니다. 제 주변 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 중 하나는 어떤 옷을 입고 나갔을 때 같은 걸 입은 사람을 마주치는 순간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른 어디에서도 소개된 적 없는 브랜드, 생산량이 많지 않은 제품을 찾는 것에 열을 올리는 편이고, 저 역시도 그런 의류나 브랜드를 디깅하는 성향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비단 이태원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울프소셜클럽을 어떤 공간으로 운영해 나갈 계획이신가요?

울프소셜클럽 (김진아 대표)

무언가를 억지로 시도하기보다는 지금의 모습과 가치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보람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새로운 걸 추구하고 쫓아가길 좋아하는 한국에서 뜻하는 바를 유지하며 장사하는 건 정말 쉽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물론 가만히 머물러 있겠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방문해 주시는 분들은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내부적으로 ‘소리 없는’ 노력과 업데이트가 꾸준히 이뤄지거든요. 그렇게 사람들이 울프소셜클럽에 기대하는 바에 변함없이 부응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결같은 공간이고 싶어요. 울프소셜클럽처럼 철학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공간일수록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거거든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기로 한 시간에는 문을 열어두는 것, 영업시간에는 별다른 걱정 없이 당연히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 그런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블리스풀 바버샵은 어떤 공간인가요?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블리스풀 바버샵 (동혁, D2, 선우 원장)

블리스풀 바버샵은 기본적으로는 맨 스타일링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용샵이지만, 나아가서 저희는 안식처와 같은 공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발만 하고 가는 것보다도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털어내실 수 있도록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실제로 고객분들이 저희 바버들과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나누면서 힐링하러 오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마치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살롱에 가까운 공간이라고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일상적인 소재를 해체하고 조합하여 독창적인 결과물로 완성하시는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영감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얻고 계신가요?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이곳저곳 산책하는 길 위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는데요. 특히 동네 골목길에 계신 어르신들께서 갖고 나와 앉아 계시는 의자나 사용하시는 물건들을 보며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등받이가 부러진 의자를 끈이나 철사를 덧대어 수선하신 모습을 보면 생활에서 나오는 재료들을 과감하게 활용하는 방식이 작가들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감정이나 생각을 적어뒀다가 어떻게 이미지로 구체화할지 천천히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렇다면 국내 음악 씬에서 이태원이라는 지역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야말로 언더그라운드, 아웃사이더적인 지역이라고 봅니다. 때때로 이질적인 면모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곳이 없다면 모든 문화는 획일적인 모습이지 않을까요? 평범함을 거부하고 나아가 트렌드를 흔드는 이태원 같은 지역이 있기에 음악을 비롯한 문화는 언제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질적이기 때문에 독보적인, 그런 동네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이태원 프리덤’이죠. 이태원은 자유로움을 인정해 주는 동네인 것 같아요.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동네랄까요? 덕분에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일종의 문화가 이태원을 이태원답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기업,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장년층이 스스로의 멋을 발견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장 운영 이외에도 이러한 외부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계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블리스풀 바버샵 (동혁, D2, 선우 원장)

혹시 ‘더뉴그레이 클럽’을 알고 계신가요? 감각적인 시니어를 위한 클래스를 진행하는 소셜 클럽인데요. 해당 클럽을 운영하고 계신 대표님과 D2 바버의 오랜 인연으로 외부에서 스타일링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외부 프로젝트를 하면서 숍에서 손님분들을 응대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정들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는데요. 이를테면 롯데백화점과 협업했던 시니어 스타일링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700:1의 경쟁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많은 분들께서 신청해 주셨어요. 그러면 아버님을 스타일링해드리고 촬영하는 그 자리에 남녀노소 모든 가족분들이 모두 동행하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다른 종류의 뿌듯함을 가득 느끼게 됩니다. 더뉴그레이 대표님과의 소중한 인연, 그리고 뜻깊은 성취감이 있는 한 앞으로도 이런 다양한 외부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나갈 예정입니다.

일련의 상황 속에서 이태원은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할까요?

웰컴레코즈 (DJ ANDOW)

오랜 기간 이태원을 상징해 온 해밀턴 뒷골목만 가봐도 아시겠지만, 주점 위주의 평범한 상권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제 여느 동네랑 다른 게 없는 것 같아서 다소 아쉬워요. 예전처럼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개성 강하고 매력적인 소규모 공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VISLA FM, QUEST 등 라디오와 공간으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계십니다. 각각의 미디어와 채널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VISLA FM은 지역적인 측면에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서울의 음악적인 색깔을 더 다채롭게 하고자 만든 플랫폼입니다. 디지털 피드에 떠도는 수많은 아티스트의 이름,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의 볼륨을 더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물론 이 도시의 음악적인 흐름 사이에 VISLA FM이라는 주파수가 존재하길 바랍니다. QUEST는 사무실을 옮길 때 재밌게 생긴 공간 구조에 매력을 느껴 갑작스레 떠올린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곳은 손님과 친구들을 맞는 VISLA만의 방식이자 응접실의 개념인데 작은 바(Bar), 쉼터였으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VISLA FM 스튜디오와 QUEST로 운영 중입니다.

그 무렵 헬카페 로스터즈를 방문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단골 많은 동네 카페’의 분위기가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경험하신 보광동, 그리고 이태원은 어떤 동네였나요? 분위기, 일화 등을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헬카페 (임성은 대표)

이태원은 역시 다양성이 있는 동네죠. 보광동만 해도 서울 중심권에서 이렇게 집값이 저렴한 동네가 또 없다 싶은데, 그런가 하면 1km 권역 안에는 고급 주택가가 공존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군 부대 철수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몰렸고요. 그러다 보니 문화적으로나 소득 수준으로나 굉장히 많은 것들이 뒤섞인 독특한 동네였어요. 옷차림새도 그렇고, 사람들의 태도도 그렇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요. 특히 보광동에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금전적인 여유가 부족한 젊은 청년분들이 많이 살았거든요.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다양한 서브 컬처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아무래도 그분들이 인근에서 취향에 맞는 공간들을 찾아 소비하잖아요. 그런 분들 덕분에 저희가 먹고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이태원 얘기로 넘어가볼까요? 대략 이태원을 언제부터 드나들기 시작하셨나요?

나나영롱킴 (나나영롱킴)

고등학교 때였어요. 저는 부산 출신인데 아무래도 LGBTQ+ 커뮤니티 자체가 서울에 비해 엄청 작다 보니 남자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아저씨 같지만 제가 PC통신 세대여서 천리안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찾다가 서울에 게이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는 걸 들었어요. 그래서 한 번은 친구랑 한번 가볼까 생각해서 밤에 이태원을 가봤는데 정말 길거리에 트랜스젠더 누나들이 오가고, 남자들끼리 부둥켜안고 지나가고, 그런 바이브를 경험하게 된 거죠. 그때 ‘아, 진짜 서울로 와야겠구나’ 결심했고, 동경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 것 같아요.

말씀해 주신 대로 바버샵은 기본적으로 헤어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지만, 삶을 가꿔 나가는 태도를 가진 분들이 모이는 일종의 취향 공동체 같다는 인상을 받고는 합니다.

블리스풀 바버샵 (동혁, D2, 선우 원장)

실제로 그런 측면이 없진 않지만, 되려 바버샵이 매니악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쉽게 방문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짧은 머리만 한다, 너무 무거운 분위기의 공간일 것 같다는 등의 선입견을 가진 분들도 많죠. 물론 바버샵의 기원을 생각하면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요즘은 바버샵도 진화하고 있거든요. 바버들이 긴 머리 스타일링이나 염색, 펌 등을 배워 다양한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해 드립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는 점, 다양한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는 점, 나아가서는 세심한 일대일 서비스를 통해 내적 친밀감을 쌓아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맘 편히 방문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의 뿌리라고도 볼 수 있을 360 Sounds 아티스트분들의 활동을 접할 때마다 인상적이었던 건, 장르 불문 왕성한 디깅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일종의 내공이 엿보인다는 것이었는데요. DJ로서, 레코드숍의 대표로서 ‘디깅, 수집’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웰컴레코즈 (DJ ANDOW)

사실 제가 수집하는 게 음반밖에 없긴 해서 그걸 예로 들자면, 물론 저도 디지털 음원을 사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MP3는 온전히 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아무래도 무형적인 파일이다 보니 그렇겠죠. 그래서인지 레코드를 수집하는 것의 매력은 ‘이 음악이 온전히 내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형태가 있는 음반을 직접 만지며 살필 수 있다는 점 역시 매력인데, 마치 음악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다른 디깅이나 수집의 매력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Photo, Design, Fashion 세 가지 요소를 집약한 컨셉이 이색적입니다. PDF 서울은 어떤 공간인가요? 공간을 구성하신 방식과 기획 의도가 궁금합니다.

PDF 서울 (이승현 대표)

PDF 서울은 일차적으로는 책방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오직 책을 판매하기 위해 만든 공간은 아닙니다. 오히려 디자인을 전공한 뒤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해온 제 경력을 집약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고요.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비즈니스화를 염두에 두고 그동안 모아온 아트북을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편집숍이나 디자인 스튜디오로의 확장도 고려하고 있는, 일종의 플랫폼 성격의 공간입니다.

오랜 기간 공간을 운영하며 경험해 오신 이태원 지역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울프소셜클럽을 한남동에 오픈하신 과정과 이유 등도 궁금합니다.

울프소셜클럽 (김진아 대표)

사실 처음 제 가게를 오픈했던 건 2013년 경리단길이었어요. 그땐 앞서 말씀드린 맥파이를 보고 동네에서 함께 뭔가를 하면 즐거울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동업자와 함께 ‘골목 바이닐 & 펍’이라는 공간을 오픈했는데, 바이닐로 디제잉을 하고 캐주얼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형태의 펍이었죠. 당시에는 LP바 라고 하면 중년 아저씨들이 정장을 입고 위스키를 마시는 다소 칙칙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저희는 그걸 완전히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게를 오픈하자마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경리단길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된 것에 제가 운영하던 공간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2014년, 2015년 넘어가면서부터는 제가 정말 좋아했던 모습들은 급격히 사라졌고 기획 부동산의 활동으로 인한 상업화의 결과, 끝내 모두가 알듯 골목은 조용해졌어요. 2017년 울프소셜클럽을 준비하면서 한남동을 택한 건 이태원 일대를 떠나고 싶진 않지만 피신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최대한 늦게 일어날 것 같은 곳을 찾아서 온 거죠.

끝으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나영롱킴 (나나영롱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만 자유로워 달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딱 그거야! 계속 이렇게 네 맘대로 살아라, 이태원아!”

대표님의 해외 생활과 경험이 일종의 모티브로서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위 풍부한 콘텐츠 자산을 지닌 세계 유명 도시들은 다른 도시와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PDF 서울 (이승현 대표)

대체로 콘텐츠 자산이 풍부한 도시들은 다인종, 다문화인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각각의 고유한 문화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형성되는 일종의 문화적 역동성이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도시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관용적인 태도가 인상적인데요. 우리는 모두 환영한다는 그런 태도로부터 창의적인 문화가 발현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태원의 한 시기를 몸소 경험하신 입장에서, 앞으로 이태원의 지역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역사적으로 이태원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쳐온 미군 부대도 거의 철수가 완료되었고, 이태원도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이 바뀔 수밖에 없겠지만, 오랜 시간 지역을 지켜온 양복점을 비롯한 상점들이 조금 더 명맥을 유지하며 지역의 정체성을 지켜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서는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이나 생동감이 더욱 선명해졌으면 합니다.

원래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선테일러 (이생로 대표)

좋아했죠. 고등학교 다닐 때 저는 교복도 양복점에 가서 맞춰 입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패션에 단순히 관심이 있는 것과 양복점을 운영하는 건 또 다른 문제거든요. 본업이었던 호텔 분야에서는 제가 석사, 박사였지만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건 잘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이제는 40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보니 도사가 됐습니다. 누구든 매장을 방문하시면 곁눈질만 해도 단번에 사이즈를 알 수 있어요.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극장이란 공간을 운영하고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계신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체감하고 계신가요?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코로나 기간이 공연 예술이나 영화 분야에 큰 타격을 입힌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외출하지 않아도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켰기 때문 아닐까요? 굳이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이용하면 되듯이 집 안에서 노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한 것 같아요. 아울러 요즘 MBTI가 유행하는 덕분이랄까요? 예전에는 ‘좀 나가서 뭔가 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면 요즘은 집에 붙어 있는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I’형 인간이라는 일종의 좋은 구실이 생기기도 했고요. 물론 연극계는 아주 오랜 기간 비주류 장르에 가까웠기 때문에 사실 특별히 더 힘들어진 부분을 체감하긴 어렵지만, 그런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변화하는 게 긍정적일 수는 없겠죠.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태원의 특성상 코로나 기간 수많은 공간들이 영업을 중단하거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력이 가득했던 많은 공간들을 이젠 볼 수 없게 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적어도 그런 공간들에서 엿볼 수 있었던 이국적이면서도 개성이 뚜렷한 면면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미군 기지 공원화, 지역 재개발 등 수많은 변수를 앞두고 있지만 적어도 프랜차이즈 점포 가득한 여느 동네처럼 평범해지진 않았으면 합니다.

주변을 걸어보면 예스럽고 조용한 정취가 느껴집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경험한 인근 지역은 어떤 곳이었나요?

마하 한남 (김동현 소장)

일단 이 동네에 온 이유는 단도직입적으로 월세 때문이죠. 저는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는데, 상권이 형성되는 순간 월세가 네다섯 배 뛰거든요. 다시 말해 이곳은 정말 마을이라고 부를 만한 주거 지역입니다. 게다가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곳이라서 오래된 건물이 많아요. 남향으로 한강 조망을 누릴 만한 프리미엄이 있어서 평당 1억 넘는 감정가가 형성되어 있고, 어차피 철거될 집이기 때문에 재개발이 시행되길 기다리며 낡은 집에 살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민분들의 삶은 다소 열악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이 느껴지고 조용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어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습니다.

지역 내부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가리켜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태원에 살고 이태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올해 초까지는 길거리가 굉장히 횅하더라고요. 그래도 최근에는 제법 사람이 모이고 상권도 회복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다만 장사를 20년 넘게 해오신 한 사장님이 ‘다음에는 뭐가 터질지 무섭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무거운 마음은 여전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다른 한편으로 이태원은 외부 방문객이 많은 동네인데, 정작 이태원 로컬이라고 볼 수 있는 분들의 책임이 아닌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한 것에서 일종의 답답함도 어느 정도 느낄 수밖에 없고요. 저희 입장에서는 이태원에서 대규모 이벤트를 만들어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게 아무래도 안타까운 점입니다. 2016년부터 꾸준히 참여해서 함께 만들어 온 이태원지구촌축제의 올해 개최 여부도 여전히 불확실하고요. 올해 할로윈은 당연하게도 추모의 분위기로 보내게 되겠죠.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태원에서 많은 사람들과 음악을 나눌 수 있는 기획을 내는 게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리스풀 바버샵이 문을 연 이후로 어느덧 3년이 되었습니다. 직접 공간을 운영하며 경험하신 이태원은 어떤 동네였나요?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표현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블리스풀 바버샵 (동혁, D2, 선우 원장)

‘이태원 프리덤’이라는 노래도 있듯이 이태원은 정말 자유로운 동네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선입견 때문에 좀 멋진 사람들이나 개성 있는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쉽사리 방문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으신데요. 실제로 와보시면 오히려 자신감이 차오르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이태원 사람들은 스스로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자유 역시 존중하거든요. 어떤 선입견에도 구애받지 않고 각자만의 개성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동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대할 때도 편견 없이 서로 호응해 주고, 그러다 보면 모르는 사람과 서로 칭찬하고 친해지는 경우가 정말 흔하고요. 다소 강렬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선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런 동네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볼레로 (손기정 대표)

이태원은 ‘언더그라운드’입니다. 절대 상업적인 게 어울리지 않는 동네고요. 분명히 문화가 먼저인, 그런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동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근본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향해 계속해서 뿌리내리는 동네인 것 같습니다.

언더그라운드 전자 음악을 콘텐츠로 삼는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장소성을 지닌 클럽과 라디오 스테이션 사이에 뚜렷한 차이점도 존재할 것 같습니다. 라디오 스테이션을 통한 활동과 클럽 베뉴의 활동 간에는 어떤 차이점이 존재할까요?

앞선 답변과 일부 동일한 맥락인데요. 방문객을 상대하는 클럽 베뉴들은 부득이하게 대중적인 인기 장르 위주로 음악을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디펜던트 라디오는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장르를 자유롭게 선곡할 수 있죠. 다른 한편으로 SCR은 훌륭한 스튜디오 프로듀서진을 보유하고 있고 상당한 퀄리티의 라이브 연주 콘텐츠, 그중에서도 생소한 장르의 라이브 연주를 선보이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단순히 어떤 음악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트렌드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음악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을 나누고자 합니다. 클럽에서는 현실적인 여건상 그렇게 하기 어렵지만, SCR에서는 모든 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