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언더그라운드씬의 DJ를 비롯한 뮤지션들과 활발하게 교류해 오셨습니다. 몸소 경험하신 이른바 서브컬처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볼레로 (손기정 대표)

일단 볼레로가 중시하는 ‘음악’, 그중에서도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초점을 맞춰보면, 제게 있어 음악-클럽 문화 자체가 인생의 필수 요소랄까요? 구체적으로 음악은 일상 속 해소의 매개체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평일에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주말에 좋은 음악을 들으러 볼레로와 같은 공간을 방문하고, 이 공간에서 좋은 기억을 얻고, 다음 한 주를 힘내서 시작하곤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음악을 곁에 두는 건 곧 일상을 유지하게끔 하는 동력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헬카페 로스터즈는 보광동에 자리를 잡았는데요. 첫 매장을 오픈하는 동네로 보광동을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울러 이후 타 매장 역시도 모두 용산구 일대에 선보이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당시 카페 하면 홍대였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동업자도 홍대에서만 30년 가까이 살았는데, 상권이 포화상태이기도 했고 그런 곳에서 우리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가 다소 의문이었어요. 그러면 다른 동네는 어디가 적합할까 싶었는데, 저희가 술 마시려고 이태원을 종종 드나들 때였거든요. 이태원이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적당한 공간을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헬카페 로스터즈 자리가 보증금과 월세 모두 부담이 없어서 보광동에 첫 매장을 내게 되었고요. 이후에 용산구 일대에 매장을 낸 이유도 단순했습니다. 다른 동네를 알아보다가도 굳이 먼 곳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군요. 매장 관리나 직원 교육이 편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나중 일이었고요.

앞선 답변의 연장선에서 현재 SCR이 집중하고 있는 활동과 앞으로의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스튜디오 콘텐츠 제작 활동을 통해 SCR은 탄탄한 언더그라운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오프라인 이벤트를 통해서도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죠. 대표적으로 양양 하조대에서 선보인 비치 페스트 ‘HAZODAZE’와 가장 한국적인 공간인 찜질방에 레이브를 결합한 파티 ‘JJIMJILBANGDAZE’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저희 내부적으로는 온라인 채널의 영향력을 오프라인에서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는 사실에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라디오 채널을 운영하면서 쌓아온 음악적인 네트워크와 기술적인 역량을 활용해 한국적인 여러 요소들을 탄탄한 구성으로 재밌게 풀어낸 파티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물론 스튜디오 콘텐츠 역시도 한층 더 흥미로운 기획을 통해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고요.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담론이 나날이 뿌리를 내리는 와중에, 여전히 고민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이슈들이 상존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대표님께서는 2023년 대한민국 여성의 현주소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울프소셜클럽 (김진아 대표)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육체적인 거리 두기를 했지만 누구나 정신적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기간 소외감이나 우울감을 쌓아왔던 사람들에 의한 충동적인 범죄가 점층적으로 드러나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여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느낌이랄까요? 그러다 보니 사회 운동 역시도 힘을 잃게 된 것 같습니다. 원래 목표가 뚜렷해야지 그쪽으로 열심히 달려가는데, 지금은 여기까지 왔는데 그다음은 어디로 가야되는지 약간은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코로나 사태와 같은 건 인류가 경험하지도 못했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의 여파가 상당히 오래갈 것 같은데요. 코로나 시대가 남긴 결과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드러날 것이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Independent Underground Radio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다소 생소하게 여길 수 있는 분들께 독립 라디오 플랫폼과 SCR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커뮤니티라디오(이하 SCR)는 국내 최초의 언더그라운드 전자 음악 전문 미디어 채널로서 지난 2016년부터 라이브 스트리밍 기반의 콘텐츠들을 제작하고 송출해 왔습니다. 기본적으로 재능 있는 로컬 뮤지션들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에 집중해 왔고요. 나아가서는 세계 각국의 언더그라운드 전자 음악 관련 최신 트렌드를 국내에 소개하기 위한 콘텐츠도 제작해 왔습니다. 독립 출판, 독립 영화 등의 인디펜던트 미디어가 그러하듯 독립 라디오 플랫폼 역시 주류 미디어의 사각지대에 놓인 서브컬처를 독자적인 관점에 따라 조명할 수 있다는 장점과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SCR 역시 테크노, 정글, 드럼&베이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활동 중인 DJ들의 믹스셋을 소개하고 신인 뮤지션을 조명해 왔습니다.

서울중앙성원은 이태원의 어제와 오늘을 모두 지켜봐 왔습니다. 이슬람교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태원의 과거와 현재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1990년대까지도 성원 주변은 소위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미군 대상의 위락지구였습니다. 이슬람 지구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도 아닌 다소 험한 동네의 느낌이 강했죠.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은 이슬람 성원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슬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이슬람권 국가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공관과 그 공관에서 일하는 공관원, 상사 주재원 등이 인근 지역에 다수 정착했습니다. 아울러 미군 부대 이전이 진행되면서 이태원 소방서부터 성원까지 오는 길에 가득했던 위락 시설들이 하나둘 사라졌고, 그 자리를 이슬람 관련 식당이나 상점이 채웠는데요. 결과적으로는 무슬림들이 종교 활동차 성원을 방문했다가 인근 식당을 이용하거나 식료품을 구매하는 등 일종의 상권이 형성되었습니다. 구청 차원에서도 이슬람 거리를 조성한 뒤 인근 환경을 정비하기도 했고, 무슬림 해외 관광객 사이에서는 성원 주변 지역이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기도 합니다.

원래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선테일러 (이생로 대표)

좋아했죠. 고등학교 다닐 때 저는 교복도 양복점에 가서 맞춰 입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패션에 단순히 관심이 있는 것과 양복점을 운영하는 건 또 다른 문제거든요. 본업이었던 호텔 분야에서는 제가 석사, 박사였지만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건 잘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이제는 40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보니 도사가 됐습니다. 누구든 매장을 방문하시면 곁눈질만 해도 단번에 사이즈를 알 수 있어요.

주변을 걸어보면 예스럽고 조용한 정취가 느껴집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경험한 인근 지역은 어떤 곳이었나요?

마하 한남 (김동현 소장)

일단 이 동네에 온 이유는 단도직입적으로 월세 때문이죠. 저는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는데, 상권이 형성되는 순간 월세가 네다섯 배 뛰거든요. 다시 말해 이곳은 정말 마을이라고 부를 만한 주거 지역입니다. 게다가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곳이라서 오래된 건물이 많아요. 남향으로 한강 조망을 누릴 만한 프리미엄이 있어서 평당 1억 넘는 감정가가 형성되어 있고, 어차피 철거될 집이기 때문에 재개발이 시행되길 기다리며 낡은 집에 살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민분들의 삶은 다소 열악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이 느껴지고 조용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어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수집의 과정이 컬렉션으로 축적되고, 궁극적으로는 PDF 서울이란 공간 미디어를 통해 정교한 큐레이션으로 탈바꿈했다고 생각됩니다.

PDF 서울 (이승현 대표)

맞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일하는 분야와 관련해서 관심 있던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아티스트 관련 책을 모으기 시작했고요. 차차 음악이나 미술 등의 분야에도 관심이 생기면서 수집 자체가 일종의 취미가 된 것 같아요. 물론 처음부터 컬렉션을 구성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수집에 몰입하다 보면 하나의 컬렉션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공간화가 된 느낌입니다.

사진, 디자인, 패션은 분명 연관된 부분도 있지만, 각각 별개의 특성과 개성을 지닌 장르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세 가지 분야에 대한 대표님의 취향은 어떤 과정과 계기로 형성되었을까요?

PDF 서울 (이승현 대표)

원래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서 일하다가 취미 겸 부업으로 사진 촬영을 시작했고요. 패션 역시도 디자인, 사진과 관계된 분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연관성이 있는 업종이고, 상호 보완적인 업종이기도 해서 모아온 컬렉션도 해당 분야에 집중된 것 같습니다.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는 보광동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헬카페를 ‘강배전 원두 풍미에 눈을 뜨게 해준 곳’으로 표현했습니다. 헬카페가 지향하는 커피 맛은 무엇인가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헬카페를 오픈할 무렵에는 산미가 두드러지는 스페셜티 커피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저와 동업하는 권요섭 대표 모두 그런 맛이 취향에 맞지 않더군요.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맛을 내기보다는 다른 걸 해보자는 다소 청개구리 같은 심리도 있어서 업계의 주된 흐름과는 다르게 강배전 커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진하고 쓴맛을 좋아하는데, 사실 한국어에서 ‘쓴맛’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잖아요.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맛 사이에서 쓴맛의 밸런스를 적절하게 맞춰주면 묵직하고 기품 있고 진중한 느낌을 낼 수 있거든요. 다시 말해, 헬카페가 지향하는 커피 맛은 진하면서도 복합적인 매력을 지닌 쓴맛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보광동에서 느끼고 있는 이런 다양성을 이태원 역시 가지고 있는데, 그런 면면이 더욱 깊게 뿌리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역량을 키우고 각자의 생업이나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공공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적절하게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태원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정말 많은 이들 사이에서 제법 탄탄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거든요. 이러한 현황에 관심을 갖고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졌으면 해요. 그와는 별개로 저희 보광극장 역시 지역 예술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고요.

그래서인지 마하 한남은 마치 사적인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기획하신 의도와 신경 쓰신 부분이 궁금합니다.

마하 한남 (김동현 소장)

들어왔을 때 카페에 온 느낌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건축가의 서재’라는 기본 컨셉 역시 일맥상통하죠. 그래서 안방, 거실, 주방의 원래 성격을 배치된 가구를 통해 살려보고자 했습니다. 아일랜드 바가 설치된 곳은 원래 주방이었고, 안방과 거실이었던 구역에도 각각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가구들을 배치했죠. 보통 카페나 식당에서는 테이블과 의자 세트를 반복 배치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 반대급부로 더욱 다양한 가구들이 조화롭게 있으면 상업적인 느낌보다는 안락함을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하건축사사무소의 소장이자 마하 한남의 대표로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마하 한남 (김동현 소장)

5년 정도 대형 설계사무소에서 주상복합이나 고층빌딩 등을 설계하다가, 대형 건축물의 일부만을 작업하는 것이 다소 아쉬워 독립해 마하건축사사무소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저를 비롯한 청년 건축가 3명이 함께 공동 사무실을 얻기로 했는데요. 한정적인 예산에 한 층을 통으로 임대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더군요. 그래서 사무 공간을 제외한 남는 공간을 손님에게 오픈하는 개념으로 이른바 ‘건축가의 탕비실’ 컨셉의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그게 용산역 인근에서 운영 중인 ‘3F/LOBBY’입니다. 카페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임대료를 충당해 보자는 아이디어였는데, 예상보다 널리 알려져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부가적인 수익이 본업에 자율성을 더해주는 일종의 경제적인 체력을 만들어 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생계가 걸려 있으면 원치 않는 일을 받게 되고,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독립해 나오면서 그런 경험을 녹여 만든 공간이 ‘마하 한남’입니다. 오롯이 제 취향대로 설계한 뒤 운영하고 있고요. 이외에도 작은 근생 건축물이나 단독 주택 등의 인테리어, 리모델링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울프소셜클럽 (김진아 대표)

분명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추세이지만, 이태원처럼 응집된 커뮤니티를 갖춘 곳은 드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요소가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맛과 멋, 문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그런 콘텐츠들이 유지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해방촌의 모로코로나 카사블랑카와 같은 생소한 문화와 맛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자리를 지켜주길 기원합니다.

코로나 사태를 비롯한 난관 속에 이태원 지역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직접 지역 내에서 활동하고 계신 입장에서 이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PDF 서울 (이승현 대표)

저도 타격이 꽤 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생각보다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PDF 서울은 업종 상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은 측면이 없지 않지만, 주말에는 다시 밤에 차가 막히기 시작했고, 오가는 사람의 숫자도 늘고 택시도 많아지고, 여러모로 상권 자체가 다시 붐비는 분위기입니다.

이태원의 한 시기를 몸소 경험하신 입장에서, 앞으로 이태원의 지역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역사적으로 이태원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쳐온 미군 부대도 거의 철수가 완료되었고, 이태원도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이 바뀔 수밖에 없겠지만, 오랜 시간 지역을 지켜온 양복점을 비롯한 상점들이 조금 더 명맥을 유지하며 지역의 정체성을 지켜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서는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이나 생동감이 더욱 선명해졌으면 합니다.

블리스풀 바버샵을 준비하시면서 다양한 지역을 고려하셨을 것 같습니다. 최종적으로 이태원 지역을 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블리스풀 바버샵 (동혁, D2, 선우 원장)

아무래도 바버샵은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는 곳이잖아요. 그런 성격을 고려했을 때 이태원은 자유도가 높은 동네라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태원 지역 자체도 자유분방하고 개성 강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런 동네와 어울리는 캐릭터를 지닌 공간이라는 일종의 시너지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고요. ‘적어도 이태원에 있는 바버샵이라면 이래야지’에 가까운 느낌이랄까요?

오랜 기간 지역에서 거주하고 활동해 오신 입장에서 주한미군, 이슬람 성원으로 대표되는 이국적인 지역성이 이태원 지역의 일상에 미친 영향을 체감하시나요?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우선 주한미군, 이슬람 사원, 대사관 등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게 된 태생적인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먹고 즐기는 문화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태원이 아닌 곳에서 케밥집을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이국적인 펍, LGBTQ를 위한 공간,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댄스 클럽 등 유독 이태원이 지닌 고유한 색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보광극장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성되었나요? 보광동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창단 멤버들이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상경해서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한 게 보광동이었어요. 남자 셋이 단칸방에 모여 살며 어떤 방식으로 연극 활동을 시작할지 고민했다고 하는데요. 통상 대학로에서 활동을 시작하지만, 만들고 싶은 공연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시도해 보기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때 거주 중이었던 보광동 자체가 흥미로운 동네이기도 하고 직접 무언가를 하기에 이 동네가 적합하겠다 싶어 보광극장을 창단했고요. 이후에 공실로 방치되어 있던 지금의 지하 공간을 알게 되어 실제 극장도 마련했습니다.

오랜 기간 경험해 온 이태원 권역은 어떤 곳이었나요?

두 팔 벌려 누구나 환영하는 그런 느낌의 동네랄까요? 언제, 누구와, 어떤 이유로든 갈 수 있겠다는 그런 열린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때론 동네의 면면이 다소 거칠고 투박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걸 갖춘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특히 다양성을 빼놓고 이태원을 얘기할 수 없을 텐데요. 거대한 LGBTQ+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고, 클럽과 바를 비롯한 수많은 베뉴들이 독창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콘텐츠를 선보입니다. 특히 서울을 대표하는 중심가 가운데서도 압구정, 홍대 등과 비교해 보면 이태원 특유의 다양성을 더욱 뚜렷하게 체감하게 됩니다.

비단 이태원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울프소셜클럽을 어떤 공간으로 운영해 나갈 계획이신가요?

울프소셜클럽 (김진아 대표)

무언가를 억지로 시도하기보다는 지금의 모습과 가치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보람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새로운 걸 추구하고 쫓아가길 좋아하는 한국에서 뜻하는 바를 유지하며 장사하는 건 정말 쉽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물론 가만히 머물러 있겠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방문해 주시는 분들은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내부적으로 ‘소리 없는’ 노력과 업데이트가 꾸준히 이뤄지거든요. 그렇게 사람들이 울프소셜클럽에 기대하는 바에 변함없이 부응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결같은 공간이고 싶어요. 울프소셜클럽처럼 철학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공간일수록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거거든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기로 한 시간에는 문을 열어두는 것, 영업시간에는 별다른 걱정 없이 당연히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 그런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릿 컬처, 그중에서도 인디펜던트한 성향의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오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웝트샵 (이석준 대표)

중학생 시절부터 친구들이 패션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이 신은 신발과 입은 옷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트릿 패션과 그 문화를 체득한 것 같아요. 스투시를 처음 알고 입었던 게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고, 나이키를 처음 신은 건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죠. 또, 당시에 일본 밴드 ‘드래곤 애쉬(Dragon Ash)’를 좋아해서 소위 니뽄 스타일로 불리던 그들의 패션을 눈여겨보기도 했습니다. 인디펜던트한 성향의 브랜드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지인들의 영향이 큽니다. 제 주변 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 중 하나는 어떤 옷을 입고 나갔을 때 같은 걸 입은 사람을 마주치는 순간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른 어디에서도 소개된 적 없는 브랜드, 생산량이 많지 않은 제품을 찾는 것에 열을 올리는 편이고, 저 역시도 그런 의류나 브랜드를 디깅하는 성향을 갖게 된 것 같아요.

VISLA FM, QUEST 등 라디오와 공간으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계십니다. 각각의 미디어와 채널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VISLA FM은 지역적인 측면에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서울의 음악적인 색깔을 더 다채롭게 하고자 만든 플랫폼입니다. 디지털 피드에 떠도는 수많은 아티스트의 이름,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의 볼륨을 더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물론 이 도시의 음악적인 흐름 사이에 VISLA FM이라는 주파수가 존재하길 바랍니다. QUEST는 사무실을 옮길 때 재밌게 생긴 공간 구조에 매력을 느껴 갑작스레 떠올린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곳은 손님과 친구들을 맞는 VISLA만의 방식이자 응접실의 개념인데 작은 바(Bar), 쉼터였으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VISLA FM 스튜디오와 QUEST로 운영 중입니다.

통상 건축사사무소의 일은 설계와 시공에서 종료되는 반면 3F/LOBBY부터 마하 한남까지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계십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마하 한남 (김동현 소장)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떠오르네요. 일단 본업이라 할 수 있는 건축사사무소 운영 관점에서 마하 한남과 같이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는 공간은 그 자체로 포트폴리오와 같습니다. 어떤 건축가의 작업을 사진이나 기사로 접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 방문하여 보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런데 건축주분들과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공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런 공간을 만드는 곳이구나’ 보다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보통 건축사사무소는 공간의 설계 단계까지를 수행하고 업무를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인데요. 직접 기획한 공간을 운영까지 해보면 방문하고 이용하는 분들의 반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설계 의도가 제대로 구현되었는지를 눈으로 보는 건 건축가로서도 일종의 배움이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카페 이외의 브랜드 공간을 계속해서 만들고 운영해 보고자 합니다.

로컬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오신 DJ의 관점에서 최근 클럽씬 또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의 동향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인상적인, 혹은 주목할 만한 콘텐츠 또는 경향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웰컴레코즈 (DJ ANDOW)

클럽 씬이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부터 양적으로는 크게 팽창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 요즘 재미가 없다고 느끼던 차였어요. 예전에는 이태원만 하더라도 케이크샵(Cakeshop)에서는 언더그라운드 성향의 진보적인 음악을 기대할 수 있었고, 소프(Soap)에는 특유의 프렌치 감성이 있었고, 트리피(Trippy)는 몽환적인 감성이 가득했죠. 이태원에 위치한 어떤 클럽에 가더라도 고유한 색채가 뚜렷했던 거죠. 그런데 요즘은 공간 수는 늘어났는데 딱 두 장르밖에 없어요. 힙합 아니면 테크노. 이런 흐름이 이태원이든, 압구정이든, 홍대든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상업적인 클럽이 아니라면 성공할 수가 없다는 일종의 공식이 생겨버리니 다채로운 개성에서 얻는 재미는 사라져 가고 있는 거죠.

커피 외적으로 헬카페의 어떤 지점을 방문하든 눈에 들어오는 상징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꽃, 스피커, 굿즈 등이 그것일 텐데요. 매장 경험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이런 요소들은 헬카페란 브랜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요즘은 고객 경험 등 다양한 용어로 그런 부분을 표현하곤 하는데, 저희는 단순하게 어떤 공간을 갔을 때 좋았던 요소들을 모아서 넣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제가 커피를 열심히 내리고 일정 수준 맛있다는 평가도 듣곤 하지만 그걸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제공할 만큼의 배짱은 없거든요. 카페에 갔을 때 음향이 별로인 것보다는 당연히 좋은 게 좋잖아요. 그리고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요. 누군가는 취향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또 누군가는 취향이 같아서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을까, 정말 단순히 그런 접근이었습니다. 다만 굿즈를 만들 때 유독 그렇지만, 이왕이면 잘 만들고 잘 꾸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선 질문과 관련해서 브랜드 또는 상품을 선별하고 제안하는 일종의 큐레이션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계실 것 같습니다. 웝트샵이 브랜드를 엄선하고 소개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웝트샵 (이석준 대표)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같은 옷을 입은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을 고유한 개성이랄까요? 그런 부분을 가장 중시하고 있고요. 못지않게 중요한 건 제가 그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의 여부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NBA를 아트워크적으로 해석해서 조명하는 매거진으로 시작한 ‘franchise’라는 브랜드의 의류를 소개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래픽부터 재질, 색감 모두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워싱된 색감이 특히 인상적이었고요. 다시 말해, 희소성의 관점에서나 디자인적 취향으로나 위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기준을 두루 충족하는 franchise 같은 브랜드와 그 상품을 발굴하고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선 질문과 관련해서 보광극장의 대표작으로는 어떤 작품이 있나요?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현재 보광극장의 대표작은 작년 10월에 무대에 올린 <살고 있어요, 보광동에>란 작품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가 보광동 골목에서 극장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지역 주민분들께서는 드물게 극장을 방문하시는 편이에요. 이른바 ‘고정 관객’이라고 말씀드릴 만한 분들이 없는 건데요. 지역과의 소통을 더욱 늘려 나가고자 하는 저희의 자체적인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주민분들의 이야기를 담아 만든 작품입니다. 대략 6개월 정도 인터뷰하면서 준비했는데요. 거절하시는 분들이 많아 힘들기도 했지만 재밌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공연에 대한 반응도 굉장히 좋았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을 공연에 초대했는데 감사하게도 실제 관람해 주신 분들이 계셔서 뿌듯했던 기억도 있네요. 다른 대표작으로는 <장문로41가길>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제목은 작품을 처음 무대에 올린 곳의 실제 주소명이고요. 극장도 아닌 공간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아가는 현실적인 이야기, 그리고 꿈과 현실을 그려낸 작품의 스토리가 인상적이기 때문인지 많은 분께 성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지금의 극장 주소인 <장문로19길 4>란 이름으로도 추가 공연을 진행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린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헬카페 (임성은 대표)

‘이태원 프리덤’이죠. 이태원은 자유로움을 인정해 주는 동네인 것 같아요.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동네랄까요? 덕분에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일종의 문화가 이태원을 이태원답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가리켜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이태원은 끊임없이 타오르고 식고 또 다시 새로운 에너지가 분출되는 곳이기에 지금 한 시점을 두고 속단하기엔 이르며, 아직 좀 더 함께 흘러가며 경험하고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태원 주민일기›에는 어떤 계기나 과정을 거쳐 참여하시게 된 건가요? 함께 참여하신 분들과의 교류, 그리고 할머니와의 경쟁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이태원 주민일기›의 경우 우사단길에 작업실 겸 매장을 두고 활동할 때 기획자 분들께서 공간을 보시고 좋은 제안을 주셔서 수락했습니다. 몇 개월 정도의 기간을 두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분들과 만나 밥을 먹거나 소통하면서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고요. 인근에는 조그만 수레나 유모차를 개조해서 폐지나 재활용품을 수거해 판매하는 분들이 많으셨는데, 그런 분들보다 앞서 물건을 수거해서 재밌는 걸 만들어본다는 취지로 ‘할머니의 경쟁자’란 타이틀을 정했습니다. 물건을 가지고 가려다 주변을 보면 할머니가 서계시는 그런 순간들이 기억에 남네요.

대표님의 해외 생활과 경험이 일종의 모티브로서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위 풍부한 콘텐츠 자산을 지닌 세계 유명 도시들은 다른 도시와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PDF 서울 (이승현 대표)

대체로 콘텐츠 자산이 풍부한 도시들은 다인종, 다문화인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각각의 고유한 문화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형성되는 일종의 문화적 역동성이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도시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관용적인 태도가 인상적인데요. 우리는 모두 환영한다는 그런 태도로부터 창의적인 문화가 발현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바버샵은 기본적으로 헤어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지만, 삶을 가꿔 나가는 태도를 가진 분들이 모이는 일종의 취향 공동체 같다는 인상을 받고는 합니다.

블리스풀 바버샵 (동혁, D2, 선우 원장)

실제로 그런 측면이 없진 않지만, 되려 바버샵이 매니악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쉽게 방문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짧은 머리만 한다, 너무 무거운 분위기의 공간일 것 같다는 등의 선입견을 가진 분들도 많죠. 물론 바버샵의 기원을 생각하면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요즘은 바버샵도 진화하고 있거든요. 바버들이 긴 머리 스타일링이나 염색, 펌 등을 배워 다양한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해 드립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는 점, 다양한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는 점, 나아가서는 세심한 일대일 서비스를 통해 내적 친밀감을 쌓아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맘 편히 방문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태원’ 하면 어떤 떠오르는 키워드가 연상되나요?

웰컴레코즈 (DJ ANDOW)

다문화, 포용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뭐든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오픈 마인드가 곧 이태원인 것 같아요.

‘용산01’번 마을버스를 타고 있으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피부색도, 연령대도 다양한 외국인들과 함께 몸을 싣고 계신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역의 대표적인 특색으로 여겨지는 다문화의 면면을 어느 정도로 체감하실 수 있었나요?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인종이 다른 분들도 다들 한국 문화에 익숙해서 마을버스에서 어르신들께 좌석을 양보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요. 길을 걷다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쳐다보면 서로 다른 인종의 아이들이 한국어로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습니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앉아 있었고, 그런 다문화의 면면이 동네에선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지역 내부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일각에서는 이태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남동, 보광동, 해방촌 등을 포괄하는 이태원 권역의 최근 동향이 어떤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헬카페 (임성은 대표)

실제로 유동 인구가 아주 많이 줄었는데요. 단순히 겉보기에 상권이 요즘 어떤지 여부보다 조금 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본적으로는 일련의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이태원이란 지역에 다소 무거운 이미지가 생겨났고, 그래서 많은 분들의 선택지에서 이태원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게 아닐까요?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 생겨나는 일종의 생기를 좋아하는 분들의 발걸음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하고요.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서서히 희미해져야 할 텐데, 그때까지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이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가치를 PDF 서울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걸까요?

PDF 서울 (이승현 대표)

그렇죠. 저도 해외에 나갔을 때 디자인숍, 아트숍 같은 공간에서 좋은 영감을 받았듯이 PDF를 찾아오시는 분들도 그런 경험을 하실 수 있게 해보고 싶었어요.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되는 와중에도 아날로그적 요소를 그리워하는 분들도 많고, 분명 페이퍼 자료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앞서 언급한 물성이 있는 자료의 가치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성원이 종교 시설로만 기능한다기보다는 마치 무슬림 생활의 구심점으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네요.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합동 예배가 있는 금요일마다 정말 많은 무슬림들이 성원을 방문합니다. 평균적으로 1,200~1,300명 정도가 방문하고 있고요. 1년에 두 번 있는 축제 예배 때는 3,000~4,000명씩 모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무슬림들에게는 성원이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겠고요. 커뮤니티의 구심점과 같은 역할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인근에서 친숙한 음식도 먹을 수 있고, 고향 친구도 만날 수 있고, 모국어도 자유로이 쓸 수 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는 그런 무슬림 타운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전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겪는 문제인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얼마나 자유롭고 조화롭게 지역이 자리잡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신 2013년 무렵과 비교했을 때 현재는 스트리트 패션과 문화의 저변이 점차 확장되는 추세인 듯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웝트샵의 관점에서 최근 씬의 동향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웝트샵 (이석준 대표)

대체로 이런 문화를 향유하는 개개인의 취향과 스타일이 굉장히 확고해진 것 같습니다. 디테일 요소가 많이 들어간 옷들도 인기를 모으고 있고, 신발도 어글리 슈즈와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도 나름의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말이죠.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에서 헤리티지가 있는 제품을 재출시하더라도 어느 정도 연령대가 있는 분들 사이에서는 화제를 모으지만, 결국 솔드아웃되지 않는 사례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만큼 취향이 뚜렷하다는 거겠죠? 다만, 너무 새로운 것만 좇는 양상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 서브컬처 씬 내 이태원역 주변, 한남동, 보광동, 해방촌 등을 아우르는 소위 ‘이태원 권역’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중심으로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웝트샵 (이석준 대표)

이태원을 처음 방문했던 건 초등학교 6학년 아니면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서태지가 신고 나왔던 에어포스 신발을 사고 싶었는데, 그걸 구매할 수 있는 게 이태원 뒷골목이어서 처음 가보게 되었죠. 이후에도 청소년기 저에게 이태원은 옷 사러 가는 곳이었고요. 그러다가 군 전역 후 20대 후반에 이태원을 다시 드나들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에는 역시 클럽을 자주 오갔는데, 역시 이태원은 클럽 문화가 강한 곳이죠.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극장이란 공간을 운영하고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계신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체감하고 계신가요?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코로나 기간이 공연 예술이나 영화 분야에 큰 타격을 입힌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외출하지 않아도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켰기 때문 아닐까요? 굳이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이용하면 되듯이 집 안에서 노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한 것 같아요. 아울러 요즘 MBTI가 유행하는 덕분이랄까요? 예전에는 ‘좀 나가서 뭔가 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면 요즘은 집에 붙어 있는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I’형 인간이라는 일종의 좋은 구실이 생기기도 했고요. 물론 연극계는 아주 오랜 기간 비주류 장르에 가까웠기 때문에 사실 특별히 더 힘들어진 부분을 체감하긴 어렵지만, 그런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변화하는 게 긍정적일 수는 없겠죠.

끝으로 이태원을 오랜 기간 지켜보신 입장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선테일러 (이생로 대표)

지역이 공생하는 방향에 대해서 지역 유지나 건물주들이 건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양보의 미덕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어요. 코로나가 2년 동안 이어졌고, 주한 미군은 철수했죠. 이태원 상권 영업이 예전 같을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원 상인들은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 일을 붙들고 있는 경우가 참 많거든요. 이럴 때일수록 대승적인 차원에서 임대료를 낮춰주고 함께 잘살아 보자는 인간미가 있어야 할 텐데 오히려 임대료를 올리는 건물도 있더군요. 그래서는 안 돼요. 너나 할 것 없이 이태원을 함께 부흥시키고 만들어 나간다는 자세로 합심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웰컴레코즈 (DJ ANDOW)

소방서 뒷골목 언덕 방향에는 게이 힐이 있고, 트랜스 클럽이 여전히 존재하는 등, 이태원에서는 정말 모든 게 공존하고 있잖아요. 그냥 그런 모습이 쭉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브라질 음식점도, 아프리카 음식점도, 지금처럼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이태원 지역에서 가장 즐겨 찾으시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요?

비슬라 (권혁인 편집장)

가장 좋아하는 곳은 클럽 cakeshop입니다. 제 20대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클럽입니다. 이곳은 저뿐만 아니라 소위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을 사랑하는 이들의 터전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데요. 정말 수많은 로컬/해외 아티스트가 이곳을 거쳐갔습니다. 10년이 넘도록 cakeshop이 지켜온 방향성은 서울에서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기에 용감하고 대단한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가리켜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 지역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웝트샵 (이석준 대표)

이태원 내에서도 세부적으로는 골목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이태원에 오래 있던 사람들은 해밀톤호텔 주변은 잘 방문하지 않는 편이고요. 오히려 그 일대는 외부에서 이태원을 놀러 오는 분들의 비중이 높죠. 오히려 이태원 토박이라고 할만한 분들은 소방서 뒷골목과 퀴논길 방면을 더 많이 오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외부에서는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이태원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코로나 전후로 크게 바뀐 게 없어요. 오히려 이태원의 위기라는 일종의 프레임은 외부에서 방문하시는 분들, 혹은 외부에서 지역을 조명하는 시선에 의해 생겨난 것에 가깝죠. 물론 조금의 변화는 있지만 결국 ‘이태원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이태원 지역에서 40년 넘게 영업해 오셨습니다. 선테일러를 운영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선테일러 (이생로 대표)

지금 생각해 보면 성장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동두천 미군 부대에서 신문 배달하며 공부한 덕분에 자연히 영어 실력을 갖출 수 있었는데요. 이후 군 생활을 마친 뒤 어학 능력을 살려 미군 부대에서 통역 업무를 하게 됐죠. 그러다 군부대 밖에서 사회 활동을 해야 성공할 수 있겠다 싶어 호텔 근무를 시작했는데, 그때 일종의 서비스 정신을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 손님분들을 응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 사업이 바로 선테일러였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한창이던 2021년에 해방촌으로 공간을 옮기신 뒤 어느덧 2년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웰컴 레코즈가 전개하는 다양한 활동이 코로나 전후로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최근 근황도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웰컴레코즈 (DJ ANDOW)

원래 레코드 제작 대행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제작 공장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한 게 아무래도 가장 큰 변화인 것 같고요. 코로나 초기에 도산공원 인근의 매장을 정리하고 현재 매장이 있는 해방촌으로 옮겨온 것 역시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리적인 위치가 바뀌었으니까요. 사실 해방촌으로 매장을 옮기면서 1층 공간을 음악 관련 전시, 플리마켓, 파티 등 이벤트만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여의찮았습니다. 그래서 당초 계획과는 달리 카페 겸 바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위 이슬람교에 대한 두려움은 낯섦과 무지로부터 비롯되기도 합니다. 말씀해 주신 굵직한 사건들이 이슬람의 이름 아래 전개된 영향도 있겠고요.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

이슬람에 관해 가장 흔히 사용되는 수식어가 ‘오해와 편견’입니다.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종교로써 전 지구적인 이웃 종교로 널리 자리 잡고 있고, 다른 무엇보다도 평화와 평등의 가치를 설파하는 종교입니다. 그런 가치가 어느 국가에서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무슬림이 생겨나고 점차 교세가 확장되는 것이죠. 이러한 교리를 진지하게 탐구한다면 이슬람교는 오히려 유연하고 변화에 적극적인 종교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지역 내부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가리켜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실생활에서 가장 와닿는 건 인근 감자탕 맛집이 24시간 영업을 종료했을 때였어요. 원래 보광동은 이태원에서 놀던 분들이 밤늦게 넘어와서 식사하며 3차, 4차로 노는 동네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발걸음이 드물어지다 보니 심야에 운영하는 식당들이 없어졌고, 그럴 때마다 인적이 드물어진 이태원의 근황을 체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귀가할 때 이태원을 지나서 가거든요. 해밀톤호텔 골목에서 참사가 발생한 직후 녹사평역에 마련된 분향소 주변을 오갈 때면 정치적인 다툼이 너무 역력한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왜냐면 희생자분들에 대한 존중이 없는 원색적인 현수막이 정말 많이 걸렸거든요. 이태원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고 외부에서 방문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만약 그분들이었다면 현수막을 보고는 굉장히 불편한 마음이 들 것 같았어요. 여러모로 당시 가장 아쉬웠던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이태원 지역 자체적으로도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웰컴레코즈 (DJ ANDOW)

무엇보다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인지 공실이 심심찮게 보이거든요. 사실 저희도 매장을 옮길 때 이태원 대로변 역시 고려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들어갈 수가 없었거든요. 저는 이런 모습이 심리적, 문화적인 경직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적인 단면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요.

많은 인터뷰를 통해 ‘드랙’ 컬처를 알려오셨습니다. 다소 생소하게 여길 수 있는 독자분들을 위해서 드랙이 무엇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나영롱킴 (나나영롱킴)

사실 드랙은 굉장히 오랜 문화이긴 하거든요. 다만 외국에선 자리가 잘 잡혀 있는데 비해 국내에선 생소했을 뿐이죠. 이전에는 드랙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이 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 사전적인 의미 같은 것들을 구구절절 설명하기 바빴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후로 드랙퀸 친구들이 더 많이 활동하면서 온라인에도 관련 자료가 방대하게 쌓이기 시작했고, 일일이 설명해도 오해와 편견이 여전하다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드랙퀸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직접 인터넷에서 찾아보실 것을 권해드리고 있어요. 남녀를 떠나서 정체성을 표현한다, 여성성을 표현한다, 남성성을 표현한다, 모두 맞아요. 정해진 건 없고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를 과감하게 방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터넷 찾아보세요 여러분!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웃음)

오랜 기간 공간을 운영하며 경험해 오신 이태원 지역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울프소셜클럽을 한남동에 오픈하신 과정과 이유 등도 궁금합니다.

울프소셜클럽 (김진아 대표)

사실 처음 제 가게를 오픈했던 건 2013년 경리단길이었어요. 그땐 앞서 말씀드린 맥파이를 보고 동네에서 함께 뭔가를 하면 즐거울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동업자와 함께 ‘골목 바이닐 & 펍’이라는 공간을 오픈했는데, 바이닐로 디제잉을 하고 캐주얼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형태의 펍이었죠. 당시에는 LP바 라고 하면 중년 아저씨들이 정장을 입고 위스키를 마시는 다소 칙칙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저희는 그걸 완전히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게를 오픈하자마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경리단길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된 것에 제가 운영하던 공간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2014년, 2015년 넘어가면서부터는 제가 정말 좋아했던 모습들은 급격히 사라졌고 기획 부동산의 활동으로 인한 상업화의 결과, 끝내 모두가 알듯 골목은 조용해졌어요. 2017년 울프소셜클럽을 준비하면서 한남동을 택한 건 이태원 일대를 떠나고 싶진 않지만 피신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최대한 늦게 일어날 것 같은 곳을 찾아서 온 거죠.

마지막으로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볼레로 (손기정 대표)

이태원은 ‘언더그라운드’입니다. 절대 상업적인 게 어울리지 않는 동네고요. 분명히 문화가 먼저인, 그런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동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근본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향해 계속해서 뿌리내리는 동네인 것 같습니다.

그 무렵 헬카페 로스터즈를 방문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단골 많은 동네 카페’의 분위기가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경험하신 보광동, 그리고 이태원은 어떤 동네였나요? 분위기, 일화 등을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헬카페 (임성은 대표)

이태원은 역시 다양성이 있는 동네죠. 보광동만 해도 서울 중심권에서 이렇게 집값이 저렴한 동네가 또 없다 싶은데, 그런가 하면 1km 권역 안에는 고급 주택가가 공존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군 부대 철수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몰렸고요. 그러다 보니 문화적으로나 소득 수준으로나 굉장히 많은 것들이 뒤섞인 독특한 동네였어요. 옷차림새도 그렇고, 사람들의 태도도 그렇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요. 특히 보광동에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금전적인 여유가 부족한 젊은 청년분들이 많이 살았거든요.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다양한 서브 컬처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아무래도 그분들이 인근에서 취향에 맞는 공간들을 찾아 소비하잖아요. 그런 분들 덕분에 저희가 먹고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