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극장
이태원 헤리티지 맨션 묻고
보광극장 강민수 대표 답함
보광극장
2017년 보광동에서 창단한 창작예술집단으로 연극, 영화, 전시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모든 예술을 지향합니다.

‘보광극단’이 아닌 ‘창작예술집단 보광극장’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활동 분야를 연극에 한정하지 않고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치자는 취지였습니다. 극단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연극에 집중하는 팀으로 인식되는 반면, 극장은 영화와 연극 양쪽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이잖아요. 창립 초기에는 자체적으로 공간을 운영하고 있진 않았지만 앞서 설명한 취지를 담아 ‘보광극장’으로 명명했습니다.

보광극장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성되었나요? 보광동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창단 멤버들이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상경해서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한 게 보광동이었어요. 남자 셋이 단칸방에 모여 살며 어떤 방식으로 연극 활동을 시작할지 고민했다고 하는데요. 통상 대학로에서 활동을 시작하지만, 만들고 싶은 공연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시도해 보기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때 거주 중이었던 보광동 자체가 흥미로운 동네이기도 하고 직접 무언가를 하기에 이 동네가 적합하겠다 싶어 보광극장을 창단했고요. 이후에 공실로 방치되어 있던 지금의 지하 공간을 알게 되어 실제 극장도 마련했습니다.

그동안 무대에 올리신 작품은 각각 서로 다른 줄거리와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작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중시하는 덕목이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앞서 보광극장을 창단한 인원들이 이른바 1기 멤버라면 제가 대표로 이어받아 활동하기 시작한 지 이제 1년 반 정도가 됐거든요. 그 기간 동안 초점을 맞춘 건 아무래도 저희가 가진 지역 극장이란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구현하는 여러 가지 작업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을 위한 예술 활동의 느낌이라기보다는 더 많은 지역 주민 분, 더 많은 시민 분들과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공연을 만들고 있고요. 물론 그 과정이 녹록지 않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앞선 질문과 관련해서 보광극장의 대표작으로는 어떤 작품이 있나요?

현재 보광극장의 대표작은 작년 10월에 무대에 올린 <살고 있어요, 보광동에>란 작품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가 보광동 골목에서 극장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지역 주민분들께서는 드물게 극장을 방문하시는 편이에요. 이른바 ‘고정 관객’이라고 말씀드릴 만한 분들이 없는 건데요. 지역과의 소통을 더욱 늘려 나가고자 하는 저희의 자체적인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주민분들의 이야기를 담아 만든 작품입니다. 대략 6개월 정도 인터뷰하면서 준비했는데요. 거절하시는 분들이 많아 힘들기도 했지만 재밌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공연에 대한 반응도 굉장히 좋았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을 공연에 초대했는데 감사하게도 실제 관람해 주신 분들이 계셔서 뿌듯했던 기억도 있네요. 다른 대표작으로는 <장문로41가길>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제목은 작품을 처음 무대에 올린 곳의 실제 주소명이고요. 극장도 아닌 공간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아가는 현실적인 이야기, 그리고 꿈과 현실을 그려낸 작품의 스토리가 인상적이기 때문인지 많은 분께 성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지금의 극장 주소인 <장문로19길 4>란 이름으로도 추가 공연을 진행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린 작품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뒤로 하고 맞이한 사실상 첫해였습니다. 현재 집중하고 있는 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사실 요즘 보광극장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살고 있어요, 보광동에>란 작품을 공연할 때 용산교육복지센터에서 일하고 계신 분께서 공연을 좋게 보시고는 인근의 오산중학교 선생님께 보광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게 연이 되어 학생들에게 연극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지역 극장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그런 활동에 집중하는 게 아주 좋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저희 단원들의 경우 연기 활동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게 당연하거든요. 그래서 극단으로서의 활동을 중시할지, 아니면 지역 극장으로서의 활동에 집중할지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두고 신중하게 고민 중입니다.

보광극장이 위치한 보광동은 이태원 권역 안에서도 마을의 정취가 굉장히 뚜렷한 곳입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며 경험한 보광동은 어떤 동네였나요?

간단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정말 많은 요소를 품은 동네죠. 우선 외국인 가족 또는 귀화 가정이 많다 보니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저 역시 다른 곳에 살다가 보광동에 정착한 경우라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한국말이 서툴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드는데, 막상 입을 열면 친구들과 찰지게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영락없는 초등학생, 중학생이에요. 그래서인지 저희가 중학교 연극 수업을 나갔을 때도 느끼지만, 이 동네 아이들은 인종에 대한 편견 없이 모두 함께 어울려 지내는 데 익숙합니다. 한편 저렴한 월세로 사는 젊은이들이 많은 반면 부자 어르신들도 많이 살고 계세요. 아무래도 겉보기엔 다소 낡은 동네의 느낌이지만 재개발 대상 지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정말 오래된 건물이 많고, 도로 상태도 좋지 않고, 주차도 제멋대로 하는 느낌이지만, 막상 집값이 폭등하여 부자가 된 분들도 많습니다. 다시 말해, 젊은이와 노인, 부자와 빈자, 예술가와 상인, 백인과 흑인, 온갖 요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공존하는 독특한 동네입니다.

다른 분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보광동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 중 하나는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월세가 저렴하다는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재개발 대상 지역이기 때문에 집들이 대체로 낡아서 원룸의 경우 30만 원대 월세로 구할 수 있는 방이 있어요. 그런데 동네의 입지는 굉장히 좋아서 강남은 10분 정도면 갈 수 있고, 서울 도심 어디로든 손쉽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이태원이 가깝다는 것 역시 중요한 요인 중 하나겠죠? 아무래도 문화적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활성화된 곳이다 보니 이태원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분들 가운데 보광동에 거주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역 내부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가리켜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실생활에서 가장 와닿는 건 인근 감자탕 맛집이 24시간 영업을 종료했을 때였어요. 원래 보광동은 이태원에서 놀던 분들이 밤늦게 넘어와서 식사하며 3차, 4차로 노는 동네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발걸음이 드물어지다 보니 심야에 운영하는 식당들이 없어졌고, 그럴 때마다 인적이 드물어진 이태원의 근황을 체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귀가할 때 이태원을 지나서 가거든요. 해밀톤호텔 골목에서 참사가 발생한 직후 녹사평역에 마련된 분향소 주변을 오갈 때면 정치적인 다툼이 너무 역력한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왜냐면 희생자분들에 대한 존중이 없는 원색적인 현수막이 정말 많이 걸렸거든요. 이태원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고 외부에서 방문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만약 그분들이었다면 현수막을 보고는 굉장히 불편한 마음이 들 것 같았어요. 여러모로 당시 가장 아쉬웠던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극장이란 공간을 운영하고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계신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체감하고 계신가요?

코로나 기간이 공연 예술이나 영화 분야에 큰 타격을 입힌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외출하지 않아도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켰기 때문 아닐까요? 굳이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이용하면 되듯이 집 안에서 노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한 것 같아요. 아울러 요즘 MBTI가 유행하는 덕분이랄까요? 예전에는 ‘좀 나가서 뭔가 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면 요즘은 집에 붙어 있는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I’형 인간이라는 일종의 좋은 구실이 생기기도 했고요. 물론 연극계는 아주 오랜 기간 비주류 장르에 가까웠기 때문에 사실 특별히 더 힘들어진 부분을 체감하긴 어렵지만, 그런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변화하는 게 긍정적일 수는 없겠죠.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보광동에서 느끼고 있는 이런 다양성을 이태원 역시 가지고 있는데, 그런 면면이 더욱 깊게 뿌리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역량을 키우고 각자의 생업이나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공공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적절하게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태원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정말 많은 이들 사이에서 제법 탄탄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거든요. 이러한 현황에 관심을 갖고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졌으면 해요. 그와는 별개로 저희 보광극장 역시 지역 예술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