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닝 바 & 클럽’이란 통상적인 분류로는 볼레로를 온전하게 설명하기에 다소 애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시점 기준, 볼레로를 어떤 공간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요?
대외적으로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좋은 노래들을 소개하는 뮤직바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카바레에서 영감을 얻은 공간이고요. 국내에선 카바레라고 하면 성인 유흥 업소로 인식이 좋지 않은데, 사실 그 원류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카바레는 그야말로 사교의 장이었거든요. 볼레로 역시 업종과 배경, 취향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와서 좋은 음악 듣고 칵테일 마시면서 교류하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와인바로 시작해 디제이 부스를 더하며 뮤직바로 탈바꿈했고, 지금은 다이닝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각각 의도하신 바와 변화의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볼레로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에 의해, 그분들 덕분에, 저희가 조금씩 발전해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보광동에 개업했을 당시에는 1층을 와인바로 운영했고 지하 공간은 창고로 썼는데, 창고로만 쓰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당시에도 항상 좋은 믹셋을 틀기 위해 노력할 정도로 음악을 중시했거든요. 그래서 다소 비좁더라도 좋은 음악을 듣고 가는 바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뮤직바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서 공교롭게도 볼레로를 일종의 해소 창구로 받아들여 주셔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아요. 지금의 공간은 코로나가 종식되자마자 계약했습니다. 아무래도 보광동은 주거 지역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주민들께 민폐를 많이 끼쳤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운영을 더욱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서, 인근 지역에 민폐가 되지 않는 장소를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공간이 더욱 넓어지기도 했고 지금 보시는 이 소파처럼 카바레적인 인테리어 요소를 강화할 수 있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코로나 시대’에 문을 연 이래로 많은 사랑을 받아오셨습니다. 당시의 분위기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등을 더욱 자세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DJ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가 노래를 트는 날이었어요. 주말이었고 그때도 영업을 22시까지로 제한하고 있었는데, 영업 마감이 다가올 때까지 모두 굉장히 재밌게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영업을 연장해야 한다는 DJ의 의견이 있기도 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영업을 강행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분들께서 오시더군요. 저도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던 때라, 밥벌이가 끊길까 무릎 꿇고 울면서 사죄했어요. ‘나쁜 마음이 아니다. 이해하시지 않냐’는 말씀을 드렸는데 경찰분들도 이해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법적으로 저촉되는 부분이 있으니 현장을 정리하고 조사를 받으라고 말씀하셨고 경찰서를 다녀왔습니다. 가장 재밌던 날이 제일 충격적인 날로 뒤바뀌었고,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조금은 슬픈 날이었어요. 지금은 옛이야기로 회상할 수 있지만 저에겐 코로나 시대를 상징하는 선명한 일화입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언더그라운드씬의 DJ를 비롯한 뮤지션들과 활발하게 교류해 오셨습니다. 몸소 경험하신 이른바 서브컬처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볼레로가 중시하는 ‘음악’, 그중에서도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초점을 맞춰보면, 제게 있어 음악-클럽 문화 자체가 인생의 필수 요소랄까요? 구체적으로 음악은 일상 속 해소의 매개체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평일에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주말에 좋은 음악을 들으러 볼레로와 같은 공간을 방문하고, 이 공간에서 좋은 기억을 얻고, 다음 한 주를 힘내서 시작하곤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음악을 곁에 두는 건 곧 일상을 유지하게끔 하는 동력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볼레로의 무드는 클래식 바에 비하면 비교적 산뜻한 느낌이고, 기존의 클럽에 비하면 어느 정도 드레스업이 필요한 듯한 느낌입니다. 지금의 공간을 구성하며 중시하신 부분, 아울러 방문객이 어떤 방향으로 공간을 누리길 희망하셨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지방 출신으로 처음 상경해서 일했던 곳이 클래식 바였는데요. 그때 느꼈던 특유의 중후한 분위기와 문화를 동경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언더그라운드 느낌이 물씬 나는 이태원 클럽들의 매력에 심취했고요. 앞서 언급한 클래식 바와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분위기는 상반되는 편이지만, 바로 그 대비되는 개성과 매력에 모두 이끌렸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상반된 두 가지 성향이 결국 볼레로의 톤 앤 매너를 결정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은 다소 클래식한 느낌이지만 언더그라운드적인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요소는 음악과 오시는 손님들이 채워줄 것으로 판단했거든요. 결과적으로 클래식한 디자인을 지향하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몸소 공간을 운영하며 경험하고 느끼신 보광동과 한남동 각각의 지역적인 특색과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보광동을 비롯한 이태원 지역과 한남동은 ‘낮과 밤’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네 자체도 한남동은 낮에 활발하고, 밤에는 이태원 일대가 붐비잖아요. 동네 자체의 정경과 공간들 역시 비슷한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고요.
지역 내부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일각에서는 이태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태원 권역의 최근 동향이 어떤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국가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어울려 지내는, 그런 개방적인 느낌이 좋아서 이태원에 10년 넘게 거주해왔거든요. 같은 이유로 사업도 하고 있는 건데, 최근 일어난 여러 사건·사고는 정말이지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런 불행한 사건들이 이태원이기 때문에 발생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태원은 독보적인 문화적 자산을 지닌 동네거든요. 다채로운 음식 문화와 서브컬처가 살아 숨 쉬는 동네인데, 그런 문화적 자산이 전국적으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왔죠. 독보적인 고유의 개성이 숨 쉬는 동네고 이 지역에서 배출해 낸 아티스트도 정말 많습니다. 여러 사건·사고로 인해 언론에서는 부정적인 측면만을 조명하고 있지만, 저는 이런 이태원만의 문화적 가치가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 뮤직바나 클럽을 비롯한 음악 기반 커뮤니티 공간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사실 음악을 즐기는 공간 대부분은 갓 20대가 된 분들이 주축이 되기 마련인데요. 코로나 기간에 20대를 맞이한 분들은 이런 공간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간을 어떻게 즐겨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고, 그래서인지 씬 자체의 역동성이 이전에 비해 다소 약해진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간 자체의 문제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이전 활발하게 영업하던 공간들이 2년간 제대로 영업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연이어 폐업했죠. 이후 새로 문을 연 공간들이 많은데, 요즘은 그런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다소 불분명한 느낌이에요. 심혈을 기울여서 선곡한 음악을 틀고, 좋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파티를 비롯해 흥미로운 기획을 꾸준히 선보여야만 쌓아 나갈 수 있는 공간 고유의 정체성이 아직은 전반적으로 부족한 느낌입니다.
고객 관점에서 뮤직바와 클럽 같은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요소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공간 자체의 아우라랄까요? 스테이지에 오르는 DJ에 대한 팬심이나 동경일 수도 있고, 어떤 클럽에서 오늘은 누가 음악을 튼다고 했을 때 그 문화 자체에 한번 섞여보고 싶다는 생각일 수도 있겠죠. 요즘은 그런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내공을 갖춘 공간의 숫자가 예전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공간들이 추구하는 음악의 장르가 너무 단조로워진 면도 있습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만 해도 공간의 철학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소개하고 있는데, 국내는 힙합 아니면 테크노인 양상으로 흐르고 있거든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뮤직바나 클럽의 핵심적인 매력 요소 중 하나인데, 그런 다양성이 약해진 것은 다소 우려스럽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서 이태원을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동네’로 표현했는데요. 분명 어떤 지역이든 유행의 큰 흐름이 있긴 하지만, 이태원만은 항상 그래왔듯이 그런 유행을 따르지 않는 동네로 남았으면 합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공간들이 더 많이 생겨나서, 공간마다 기대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이태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이태원은 ‘언더그라운드’입니다. 절대 상업적인 게 어울리지 않는 동네고요. 분명히 문화가 먼저인, 그런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동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근본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향해 계속해서 뿌리내리는 동네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