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종상가 박길종 대표는 보광동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헬카페를 ‘강배전 원두 풍미에 눈을 뜨게 해준 곳’으로 표현했습니다. 헬카페가 지향하는 커피 맛은 무엇인가요?
헬카페를 오픈할 무렵에는 산미가 두드러지는 스페셜티 커피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저와 동업하는 권요섭 대표 모두 그런 맛이 취향에 맞지 않더군요.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맛을 내기보다는 다른 걸 해보자는 다소 청개구리 같은 심리도 있어서 업계의 주된 흐름과는 다르게 강배전 커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진하고 쓴맛을 좋아하는데, 사실 한국어에서 ‘쓴맛’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잖아요.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맛 사이에서 쓴맛의 밸런스를 적절하게 맞춰주면 묵직하고 기품 있고 진중한 느낌을 낼 수 있거든요. 다시 말해, 헬카페가 지향하는 커피 맛은 진하면서도 복합적인 매력을 지닌 쓴맛입니다.
헬카페 운영 이전부터 바리스타로 오랜 경력을 갖고 계셨습니다. 본인만의 카페를 오픈하겠다 결심하신 계기나 과정이 궁금합니다.
사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헬카페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막연히 언젠가 제 매장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고, 지금 동업하는 권요섭 대표와 술 마시면서 그런 얘기를 몇 번 나누곤 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축구를 하다가 큰 부상을 입는 바람에 관리자로 일하던 곳에서 퇴직하고 부득이하게 쉬게 됐어요. 재활을 마치고는 다시 취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관리자로 일하면서 현장에서는 멀어지는 느낌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던 차였거든요. 그래서 권요섭 대표에게 이참에 한번 직접 카페를 차려보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했고, 그렇게 헬카페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헬카페 로스터즈는 보광동에 자리를 잡았는데요. 첫 매장을 오픈하는 동네로 보광동을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울러 이후 타 매장 역시도 모두 용산구 일대에 선보이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당시 카페 하면 홍대였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동업자도 홍대에서만 30년 가까이 살았는데, 상권이 포화상태이기도 했고 그런 곳에서 우리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가 다소 의문이었어요. 그러면 다른 동네는 어디가 적합할까 싶었는데, 저희가 술 마시려고 이태원을 종종 드나들 때였거든요. 이태원이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적당한 공간을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헬카페 로스터즈 자리가 보증금과 월세 모두 부담이 없어서 보광동에 첫 매장을 내게 되었고요. 이후에 용산구 일대에 매장을 낸 이유도 단순했습니다. 다른 동네를 알아보다가도 굳이 먼 곳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군요. 매장 관리나 직원 교육이 편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나중 일이었고요.
그 무렵 헬카페 로스터즈를 방문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단골 많은 동네 카페’의 분위기가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경험하신 보광동, 그리고 이태원은 어떤 동네였나요? 분위기, 일화 등을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태원은 역시 다양성이 있는 동네죠. 보광동만 해도 서울 중심권에서 이렇게 집값이 저렴한 동네가 또 없다 싶은데, 그런가 하면 1km 권역 안에는 고급 주택가가 공존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군 부대 철수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몰렸고요. 그러다 보니 문화적으로나 소득 수준으로나 굉장히 많은 것들이 뒤섞인 독특한 동네였어요. 옷차림새도 그렇고, 사람들의 태도도 그렇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요. 특히 보광동에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금전적인 여유가 부족한 젊은 청년분들이 많이 살았거든요.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다양한 서브 컬처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아무래도 그분들이 인근에서 취향에 맞는 공간들을 찾아 소비하잖아요. 그런 분들 덕분에 저희가 먹고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커피 외적으로 헬카페의 어떤 지점을 방문하든 눈에 들어오는 상징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꽃, 스피커, 굿즈 등이 그것일 텐데요. 매장 경험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이런 요소들은 헬카페란 브랜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요즘은 고객 경험 등 다양한 용어로 그런 부분을 표현하곤 하는데, 저희는 단순하게 어떤 공간을 갔을 때 좋았던 요소들을 모아서 넣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제가 커피를 열심히 내리고 일정 수준 맛있다는 평가도 듣곤 하지만 그걸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제공할 만큼의 배짱은 없거든요. 카페에 갔을 때 음향이 별로인 것보다는 당연히 좋은 게 좋잖아요. 그리고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요. 누군가는 취향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또 누군가는 취향이 같아서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을까, 정말 단순히 그런 접근이었습니다. 다만 굿즈를 만들 때 유독 그렇지만, 이왕이면 잘 만들고 잘 꾸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0년간의 영업 기간 동안 국내 커피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최근 국내 커피 업계의 동향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인상적인, 혹은 주목할 만한 브랜드 또는 경향성이 있을까요?
10년 사이에 전반적으로 커피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올라왔고요. 대부분 훌륭한 맛의 커피와 즐기기 좋은 공간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예전에 비해 뾰족한 개성은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실패할 만한 시도를 과감하게 하는 곳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그렇다 보니 여러 카페들이 비슷비슷해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감히 뭐라고 얘기하기가 어려울 만큼 커피 시장이 크게 성장해 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카페란 지극히 반복적이면서도 고독한 노동을 감당해야만 하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처음 목표하신 기간 대비 굉장히 오랜 기간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이러한 롱런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하게도 많은 분들께 사랑받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죠. 사실 큰 뭔가를 생각하며 카페를 해온 건 아니고, 바둑돌 하나씩 두다 보니 1,000승을 거둔 조훈현 기사님의 일화와 같은 느낌인데요. 매일매일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오픈하고, 마감하는 반복적인 일을 하는 와중에도 오시는 분들이 매일매일 다르고 커피 상태가 매일매일 다르잖아요. 그런 부분이 단순하고 지겨울 수 있는 일보다 재밌으니까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역 내부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일각에서는 이태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남동, 보광동, 해방촌 등을 포괄하는 이태원 권역의 최근 동향이 어떤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실제로 유동 인구가 아주 많이 줄었는데요. 단순히 겉보기에 상권이 요즘 어떤지 여부보다 조금 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본적으로는 일련의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이태원이란 지역에 다소 무거운 이미지가 생겨났고, 그래서 많은 분들의 선택지에서 이태원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게 아닐까요?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 생겨나는 일종의 생기를 좋아하는 분들의 발걸음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하고요.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서서히 희미해져야 할 텐데, 그때까지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이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태원은 오랜 기간 사회적인 소수자들을 위한 숨구멍 같은 창구였잖아요. 앞으로도 그런 지역으로 남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이태원 프리덤’이죠. 이태원은 자유로움을 인정해 주는 동네인 것 같아요.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동네랄까요? 덕분에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일종의 문화가 이태원을 이태원답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