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건축사사무소의 소장이자 마하 한남의 대표로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5년 정도 대형 설계사무소에서 주상복합이나 고층빌딩 등을 설계하다가, 대형 건축물의 일부만을 작업하는 것이 다소 아쉬워 독립해 마하건축사사무소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저를 비롯한 청년 건축가 3명이 함께 공동 사무실을 얻기로 했는데요. 한정적인 예산에 한 층을 통으로 임대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더군요. 그래서 사무 공간을 제외한 남는 공간을 손님에게 오픈하는 개념으로 이른바 ‘건축가의 탕비실’ 컨셉의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그게 용산역 인근에서 운영 중인 ‘3F/LOBBY’입니다. 카페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임대료를 충당해 보자는 아이디어였는데, 예상보다 널리 알려져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부가적인 수익이 본업에 자율성을 더해주는 일종의 경제적인 체력을 만들어 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생계가 걸려 있으면 원치 않는 일을 받게 되고,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독립해 나오면서 그런 경험을 녹여 만든 공간이 ‘마하 한남’입니다. 오롯이 제 취향대로 설계한 뒤 운영하고 있고요. 이외에도 작은 근생 건축물이나 단독 주택 등의 인테리어, 리모델링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통상 건축사사무소의 일은 설계와 시공에서 종료되는 반면 3F/LOBBY부터 마하 한남까지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계십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떠오르네요. 일단 본업이라 할 수 있는 건축사사무소 운영 관점에서 마하 한남과 같이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는 공간은 그 자체로 포트폴리오와 같습니다. 어떤 건축가의 작업을 사진이나 기사로 접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 방문하여 보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런데 건축주분들과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공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런 공간을 만드는 곳이구나’ 보다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보통 건축사사무소는 공간의 설계 단계까지를 수행하고 업무를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인데요. 직접 기획한 공간을 운영까지 해보면 방문하고 이용하는 분들의 반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설계 의도가 제대로 구현되었는지를 눈으로 보는 건 건축가로서도 일종의 배움이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카페 이외의 브랜드 공간을 계속해서 만들고 운영해 보고자 합니다.
오랜 목욕탕 건물을 리뉴얼하여 지금의 마하 한남을 완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우연히 인근을 지나다가 화재로 전소된 뒤 방치되어 있던 건물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건물에서 밖을 보면 지금과 같은 멋진 한강 풍경이 보일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반년 동안 건물주를 설득한 다음 추가로 반년간 공사를 진행해 지금의 마하 한남을 완성했습니다. 통상 인테리어 프로젝트는 1~2개월이면 마무리할 수 있지만, 훼손이 심한 건물에 대한 보수가 필요했고 다른 프로젝트와 병행하다 보니 기간이 길어졌습니다. 사실 목욕탕 모델링에 대한 졸업 작품을 출품했을 정도로 저는 동네 사랑방으로서 목욕탕이 지닌 기능적인 요소와 구조적인 형태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가정마다 욕조가 있지 않았던 1980~90년대에는 주말마다 온 가족이 목욕탕을 가는 게 일종의 주간 행사였죠. 보통 1층은 슈퍼마켓, 2층은 여탕, 3층은 남탕, 4층은 주인집인 구조였는데요. 이 건물 역시 마찬가지여서 마하 한남이 있는 4층은 원래 목욕탕 주인 가족의 집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하 한남은 마치 사적인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기획하신 의도와 신경 쓰신 부분이 궁금합니다.
들어왔을 때 카페에 온 느낌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건축가의 서재’라는 기본 컨셉 역시 일맥상통하죠. 그래서 안방, 거실, 주방의 원래 성격을 배치된 가구를 통해 살려보고자 했습니다. 아일랜드 바가 설치된 곳은 원래 주방이었고, 안방과 거실이었던 구역에도 각각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가구들을 배치했죠. 보통 카페나 식당에서는 테이블과 의자 세트를 반복 배치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 반대급부로 더욱 다양한 가구들이 조화롭게 있으면 상업적인 느낌보다는 안락함을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건축사로서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보통 건축사사무소에서 건물을 다 지은 다음 건축주의 취향으로 고른 가구가 들어오면 공간 자체가 이질적으로 변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밌는 건 그래서인지 건축가들도 가구가 들어오기 전에 준공 사진을 찍으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엄밀하게 얘기하면 가구 없는 빈 공간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의뢰인과 의견이 맞는다면 가구까지 함께 고르려고 하는 편이에요. 추가 비용을 받는 것도 아니고, 집주인의 만족감과 프로젝트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도를 위해서 그렇게 하거든요. 온전한 의미에서 한 프로젝트를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 그게 제가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인 것 같습니다.
주변을 걸어보면 예스럽고 조용한 정취가 느껴집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경험한 인근 지역은 어떤 곳이었나요?
일단 이 동네에 온 이유는 단도직입적으로 월세 때문이죠. 저는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는데, 상권이 형성되는 순간 월세가 네다섯 배 뛰거든요. 다시 말해 이곳은 정말 마을이라고 부를 만한 주거 지역입니다. 게다가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곳이라서 오래된 건물이 많아요. 남향으로 한강 조망을 누릴 만한 프리미엄이 있어서 평당 1억 넘는 감정가가 형성되어 있고, 어차피 철거될 집이기 때문에 재개발이 시행되길 기다리며 낡은 집에 살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민분들의 삶은 다소 열악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이 느껴지고 조용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어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태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도 들려옵니다. 인근 권역에 계신 입장에서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가까운 옆 동네인지라 이런저런 용무로 이태원을 종종 드나듭니다. 최근에는 점차 원래의 모습을 점차 회복해 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임대료가 전반적으로 너무 높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인지 공실이 많고, 아무래도 사건·사고 발생이 많았기 때문인지 다소 경직된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사건 전후로만 침체된 느낌이지 언젠가 다시 가보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어요. 마치 히어로 무비 주인공 가운데 초인적인 재생력을 지닌 캐릭터처럼 회복 능력이 대단한 동네랄까요? 장사를 할 때 컨셉이 과해도 이태원이니까 받아들여지는 요소들도 있는데, 다른 동네에 비해 실험적인 것에 열려 있는 그런 태도가 생명력을 만들어 낸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건축가의 관점에서 코로나 이후 체감하고 계신 공간 이용 패턴의 변화가 있을까요?
제가 무언가를 예약제로 이용하는 걸 싫어하는 편인데,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원래는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들도 예약 시스템을 갖춘다거나 인원 제한 등을 두고 운영하기 시작했잖아요. 보이지 않는 한 겹의 절차가 추가된 건데 그 장점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떤 공간이든 특별한 절차 없이 오픈해 두면 공간 자체를 경험할 수 있는 물리적인 인원수는 크게 늘어나겠지만, 질적으로 좋은 경험을 누리고 가는 숫자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공간을 온전하게 즐기도록 하는 운영 관점에서나 안전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일종의 절차를 두는 것에 대해 이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와 그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혼혈의 도시’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섞인 덕분에 개방적일 수 있고, 구성원들은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고요. 그러한 면모에 매료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태원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국내에선 ‘시내’라고 하는 도심의 모습이 비슷비슷하잖아요. 영화관, 프랜차이즈 점포, 술집이 많은 그런 모습 말이죠. 그런데 이태원은 혼혈적인 성격의 문화로 인해 차별화되는 요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특징적인 면모가 유지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