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로 불리는 시기를 온전히 뒤로 하고 맞이한 사실상 첫해였습니다. 코로나 기간, 그리고 올해 근황이 궁금합니다.
그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고 있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이태원 베뉴들과 공연 업계 쪽에서 콜이 많이 들어왔고, 공연도 많고 행사도 많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상황이 좋아지다 보니 생각했다 잠시 보류해 뒀던 프로젝트들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 이런저런 준비도 하며 코로나 이전보다 더 분주하게 보내고 있어요. 코로나가 한창일 때도 외부 활동이 줄어든 대신 SNS를 비롯한 온라인에서 드랙퀸으로서 제 모습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에 여념이 없었거든요. 그런 아카이브가 잘 쌓이면서 코로나가 마무리될 때쯤에는 오히려 ‘이 사람이랑 한번 일해보고 싶다’는 관심을 많이 받게 된 것 같아요.
많은 인터뷰를 통해 ‘드랙’ 컬처를 알려오셨습니다. 다소 생소하게 여길 수 있는 독자분들을 위해서 드랙이 무엇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드랙은 굉장히 오랜 문화이긴 하거든요. 다만 외국에선 자리가 잘 잡혀 있는데 비해 국내에선 생소했을 뿐이죠. 이전에는 드랙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이 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 사전적인 의미 같은 것들을 구구절절 설명하기 바빴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후로 드랙퀸 친구들이 더 많이 활동하면서 온라인에도 관련 자료가 방대하게 쌓이기 시작했고, 일일이 설명해도 오해와 편견이 여전하다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드랙퀸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직접 인터넷에서 찾아보실 것을 권해드리고 있어요. 남녀를 떠나서 정체성을 표현한다, 여성성을 표현한다, 남성성을 표현한다, 모두 맞아요. 정해진 건 없고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를 과감하게 방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터넷 찾아보세요 여러분!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웃음)
드랙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아티스트로서 활동과 드랙에 대한 관심 중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LGBTQ+로서 성 정체성이 확고하게 잡혀 있던 편이었고, 무언가 화려하게 꾸미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 연장선에서 미술을 전공하다가 경제적으로나 여러모로 힘들어서 포기했죠. 그때 또 무엇을 즐기면서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어린 시절부터 무대에 올라가고 춤추는 걸 좋아했다는 걸 떠올렸어요. 그래서 연기 공부를 시작했고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근데 막상 제가 꿈꾸던 캠퍼스 라이프가 아닌 거예요. 배우는 것도 그렇게 와닿지 않았고, 무엇보다 남녀의 사랑에 대한 연기를 할 때 아무래도 몰입할 수 없었거든요. 연기도 내 길이 아니구나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헤드윅, 프리실라, 킹키부츠 같은 LGBTQ+ 관련 영화를 보면서 드랙퀸을 알게 되었고 매료되었어요. 생각해 보면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와 메이크업을 통해 미술과 연기 양쪽 모두를 복합적으로 해낼 수 있으니까요.
영화로 드랙퀸을 접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당시 무대에 오르는 게 어렵진 않았나요?
대략 18년 전이니까 지금보다도 훨씬 생소했죠. 당시에도 이미 활동하던 1세대 분들이 있긴 했는데, 워낙 정보가 없다 보니까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인터넷을 통해 외국에서 드랙퀸 활동하시는 분들을 찾아보고 그분들을 모티브 삼아 메이크업 연습을 해보는 게 전부였는데요. 주변에 소위 잘 노는 친구들을 따라서 클럽을 오가다 댄서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는 클럽 매니저 분을 설득했어요. 무대에서 퍼포먼스 하는 드랙퀸들을 보여주면서 “나는 이런 걸 한다. 한번 써봐라. 재밌을 거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죠. 집에서 혼자 메이크업하고 연기하던 모습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앞선 질문과 관련해서 ‘나나’와 ‘영롱킴’은 일종의 페르소나로 이해해도 되는 걸까요? 각각의 캐릭터와 자아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저는 나나도 영롱킴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나일 때도 성격이 이렇고, 영롱일 때도 성격이 이래요. 말투도 같고요. 다시 말해, 저는 사실 페르소나가 없는 드랙퀸 중 한 명이에요. 물론 페르소나를 가진 드랙퀸 친구들도 굉장히 많아요. 평소에는 의기소침하고 소심해서 말도 못 걸고 이러는데, 드랙만 하면 동작과 목소리가 커지고 자신감을 갖는 친구들이 있죠. 그런 페르소나 자체가 재밌어서 드랙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반면 저는 이러나저러나 똑같은 성격이기 때문에 드랙 네임에 모든 이름을 넣은 거예요. ‘나나영롱킴’으로요.
이제 이태원 얘기로 넘어가볼까요? 대략 이태원을 언제부터 드나들기 시작하셨나요?
고등학교 때였어요. 저는 부산 출신인데 아무래도 LGBTQ+ 커뮤니티 자체가 서울에 비해 엄청 작다 보니 남자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아저씨 같지만 제가 PC통신 세대여서 천리안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찾다가 서울에 게이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는 걸 들었어요. 그래서 한 번은 친구랑 한번 가볼까 생각해서 밤에 이태원을 가봤는데 정말 길거리에 트랜스젠더 누나들이 오가고, 남자들끼리 부둥켜안고 지나가고, 그런 바이브를 경험하게 된 거죠. 그때 ‘아, 진짜 서울로 와야겠구나’ 결심했고, 동경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 것 같아요.
아주 오랜 세월 이태원은 성, 인종, 종교, 문화적 소수자 분들을 위한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이 지역은 나나 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이태원은 자유 그 자체죠. 그 이상의 무언가로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한국 그 어느 지역을 가도 스트레이트,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집결한 동네는 없잖아요. 물론 이 동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에 다소 낯설고 무서워할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분들은 이렇게나 재밌는 동네가 있구나 빠져들 수밖에 없을 거예요.
코로나 초기 이태원 클럽들이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나나 님의 활동 역시 타격이 컸을 것 같아요.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 게 2020년 5월 5일이었어요. 왜냐면 제가 그때 어린이날 행사로 부산에 공연 참석차 가 있었거든요. 부산에서 일을 마치고 서울 올라와서 쉬고 있는데, 클럽 집단 감염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거예요. 저는 그날 서울에 있지도 않았고 그 클럽에 있지도 않았는데 단순히 활동하던 베뉴에서 사건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DM을 300~400개 정도 받았죠. 동성애자들, 게이들, 이태원이 문제라고요. 심지어 LGBTQ+와 무관한 이태원 압사 사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로 인해 공황이 와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한번 닫은 적이 있어요. 그 뒤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무서웠고, 괜히 삿대질 받을 것 같고, 심지어 테러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지만, 불행 중 다행이랄까 코로나가 한창이니까 실내에 머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의기소침하고 무너져야 하지?’ 싶어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죠.
지역 내부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이태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도 들려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 이태원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은 일요일에 파티를 해왔거든요. 원래는 일요일에도 사람이 북적였으니까요. 그런데 코로나 직후에는 일요일 이태원에 사람이 모이지 않았고, 예전처럼 일요일에 문을 열던 업장들도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일요일에 문을 연 곳이 없어 방문 인원이 오히려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래서 저도 역시 파티를 다시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태원 일요일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싶은 마음에 디제이, 댄서, 드랙퀸, 가수들을 초대하는 입장료 없는 파티를 5개월 정도 이어오고 있어요. 걱정도 많았지만 서서히 방문객이 늘어 지난 달에는 400명이 방문했거든요. 저는 앞으로도 사람들이 이렇게 일요일에 이태원으로 온다면 평일 역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여전히 이태원은 살아 있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뮤지션 마돈나가 떠오르는 느낌이에요. LGBTQ+의 대변인을 자처한 적이 없지만,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지탄받고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느낌이랄까요?
다소 민감한 얘기일 수 있지만 저는 LGBTQ+의 아이콘, 게이 대표 등의 타이틀이 달갑지 않아요. 저는 그냥 저만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건데, 어느 순간 나나영롱킴의 네임 밸류가 너무 올라가서 말씀해 주신 무게감이 날로 늘어나더라고요. 유튜브도 지금은 운영을 멈춘 이유가 처음에는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는데, 이게 점점 인권적으로 빠지다 보니 심오한 내용을 다루게 됐는데요. 그런 내용을 다루는 건 좋지만, 제가 어딘가를 대변하는 느낌이 드는 건 원치 않았어요. 저는 그냥 제 인생을 살고 싶거든요. 무엇보다 저는 개인사에서 차별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중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커밍아웃했지만,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굉장히 재밌게 했어요. 그런데 제가 겪지 않은 고통을 연기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따금 LGBTQ+ 인권 운동가분들에게 명성이 있으니 목소리를 내달라는 요청을 받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제가 드랙퀸으로서 공연하고 행사에 참여하는 것부터 이미 인권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게이를 처음 보는 사람, 드랙퀸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게이 컬처의 존재와 그 매력을 알리고 있는 거고요. ‘니가 잘나서 그렇게 하는 건데 그게 무슨 인권 운동이냐’고 받아들이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스스로 원하는 삶을 충실하게 사는 데 집중할 생각이에요.
끝으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만 자유로워 달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딱 그거야! 계속 이렇게 네 맘대로 살아라, 이태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