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Design, Fashion 세 가지 요소를 집약한 컨셉이 이색적입니다. PDF 서울은 어떤 공간인가요? 공간을 구성하신 방식과 기획 의도가 궁금합니다.
PDF 서울은 일차적으로는 책방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오직 책을 판매하기 위해 만든 공간은 아닙니다. 오히려 디자인을 전공한 뒤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해온 제 경력을 집약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고요.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비즈니스화를 염두에 두고 그동안 모아온 아트북을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편집숍이나 디자인 스튜디오로의 확장도 고려하고 있는, 일종의 플랫폼 성격의 공간입니다.
사진, 디자인, 패션은 분명 연관된 부분도 있지만, 각각 별개의 특성과 개성을 지닌 장르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세 가지 분야에 대한 대표님의 취향은 어떤 과정과 계기로 형성되었을까요?
원래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서 일하다가 취미 겸 부업으로 사진 촬영을 시작했고요. 패션 역시도 디자인, 사진과 관계된 분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연관성이 있는 업종이고, 상호 보완적인 업종이기도 해서 모아온 컬렉션도 해당 분야에 집중된 것 같습니다.
다양한 수집의 과정이 컬렉션으로 축적되고, 궁극적으로는 PDF 서울이란 공간 미디어를 통해 정교한 큐레이션으로 탈바꿈했다고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일하는 분야와 관련해서 관심 있던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아티스트 관련 책을 모으기 시작했고요. 차차 음악이나 미술 등의 분야에도 관심이 생기면서 수집 자체가 일종의 취미가 된 것 같아요. 물론 처음부터 컬렉션을 구성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수집에 몰입하다 보면 하나의 컬렉션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공간화가 된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서적을 비롯한 물품의 수집에 있어 중시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원론적인 답변이지만, 아무래도 제 취향에 맞는 물품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취향이 원래부터 굳게 형성되어 있던 건 아니고요. 20대부터 30대까지를 거쳐오면서 서서히 발견해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10년 동안 모아온 책이지만 그때그때 어떤 직종에 있었는지, 혹은 어떤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서서히 확장하고 정제하며 취향을 찾아간 거죠. 그 결과물이 지금의 PDF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큰 영감과 영향을 준 몇몇 아티스트들이 있었습니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앤디 워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는데요. 문화의 흐름을 만들고 아티스트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팩토리를 운영하는 등의 활동 방식을 동경했던 것 같아요. 형식적이지 않은 디자인에 여러 가지 아트워크 작업을 해 온 것도 멋지다고 생각하고요. 사진 분야에선 헬무트 뉴튼 작가를 제일 좋아합니다. 작업물을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을 받았달까요? 베를린에 개인 뮤지엄이 있는데 전시를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레퍼런스를 찾기가 쉬운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서적을 읽거나 그림을 보는 등 실물을 디깅하는 것은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요?
모니터를 통해서 이미지를 보는 것보다는 질감적인 요소를 느끼거나 직접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 그 자체가 큰 경험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물성이 있기 때문에 ‘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소장 가치도 뚜렷하고요. 물론 디지털 이미지도 저장이 가능하지만, 얼마든지 쉽게 보고 지울 수 있어 아무래도 가볍게 여기거나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물성을 지닌 자료를 디깅하는 매력이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가치를 PDF 서울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걸까요?
그렇죠. 저도 해외에 나갔을 때 디자인숍, 아트숍 같은 공간에서 좋은 영감을 받았듯이 PDF를 찾아오시는 분들도 그런 경험을 하실 수 있게 해보고 싶었어요.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되는 와중에도 아날로그적 요소를 그리워하는 분들도 많고, 분명 페이퍼 자료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앞서 언급한 물성이 있는 자료의 가치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대표님의 해외 생활과 경험이 일종의 모티브로서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위 풍부한 콘텐츠 자산을 지닌 세계 유명 도시들은 다른 도시와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대체로 콘텐츠 자산이 풍부한 도시들은 다인종, 다문화인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각각의 고유한 문화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형성되는 일종의 문화적 역동성이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도시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관용적인 태도가 인상적인데요. 우리는 모두 환영한다는 그런 태도로부터 창의적인 문화가 발현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편집숍과 같은 기본적인 운영 방식을 넘어 다양한 방식의 사업 확장을 모색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편집숍은 일차적인 기반이 되는 플랫폼으로 보시면 되고요. 우선은 PDF 브랜드를 활용한 디자인 굿즈 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간을 방문하시는 분들의 상당수가 디자인, 사진, 패션 관련 전공자 또는 관련업 종사자이시기 때문에 그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토크 서비스나 협업 프로젝트 등의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죠. 이외에도 전시, 팝업 스토어 등 다양한 유형의 활동을 전개해 나갈 예정입니다.
PDF 서울을 기획하시는 과정에서 다양한 베뉴를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요. 최종적으로 이태원 지역을 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제가 구상하고 있던 공간과 콘텐츠에 부합하는 동네의 분위기, 그리고 적합한 공간 매물을 찾는 게 중요했습니다. 사실 1순위로 생각했던 건 한남동이었는데 임대료가 다소 비싼 편이었고 적합한 공간 매물을 찾기도 어려웠고요. 도산공원 일대, 성수동도 고려했지만 아트북을 메인 콘텐츠로 삼는 편집숍을 운영하기에는 동네의 분위기가 다소 번잡하다 싶더군요. 그때 문득 제가 거주하고 있고 친한 사람도 많고 가장 많이 머무는 이태원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역의 문화적인 성향 역시 결이 맞는다고 생각했고요. 그중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녹사평 일대에서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나 PDF 서울을 열게 되었습니다.
PDF 서울이 문을 연 이후로 어느덧 반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직접 공간을 운영하며 경험하신 이태원은 어떤 동네였나요?
공간을 운영하면서 생각이 바뀐 부분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예상한 대로 한국 사람만큼 외국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고, 20대 초중반의 소위 힙스터분들도 많이 방문하고 계십니다. 원래부터 이태원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등의 이미지를 그대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클럽씬부터 다채로운 글로벌 식문화 등 이태원은 다양한 요소를 품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이태원 하면 어떤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는지요?
‘Nightlife’ 밤을 빼고 이태원을 얘기할 수 없죠.
코로나 사태를 비롯한 난관 속에 이태원 지역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직접 지역 내에서 활동하고 계신 입장에서 이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저도 타격이 꽤 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생각보다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PDF 서울은 업종 상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은 측면이 없지 않지만, 주말에는 다시 밤에 차가 막히기 시작했고, 오가는 사람의 숫자도 늘고 택시도 많아지고, 여러모로 상권 자체가 다시 붐비는 분위기입니다.
앞으로 PDF 서울과 함께할 이태원 지역이 이런 모습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하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문화와 예술이 발달한 그런 동네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괜찮은 디자인 숍과 바 또는 라운지, 그리고 클럽 등 다양한 개성과 감도를 갖춘 공간들이 공존하며 문화적으로 건강한 생태계를 형성해 나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