웝트샵
이태원 헤리티지 맨션 묻고
웝트샵 이석준 대표 답함
웝트샵
2013년 시작된 WARPED는 웹스토어로 시작, 서울을 기반으로 해외의 다양한 서브컬처, 의류, 라이프 스타일을 국내에 소개하고 브랜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트리트 패션과 문화의 관심을 유도하고자 설립된 독립적인 리테일 스토어입니다.

2013년부터 서브컬처 기반의 패션을 비롯한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해 오셨습니다. 2023년 상반기 웝트샵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코로나를 비롯한 일련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름 잘 버텼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힘들었습니다. 워낙 해외 고객분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숍이긴 해서 그분들의 발걸음이 끊겼던 게 컸죠. 그래도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해외 손님들이 다시 느는 추세라 매출은 회복되기 시작했고, 점점 좋아지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아울러 최근에는 티셔츠를 제작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여태까진 외부 이벤트나 협업을 통한 제작 의류만 있었지 독자적으로 만들진 않았거든요. 숍 브랜딩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하긴 좀 그렇고, 제가 입고 싶은 그래픽을 넣은 웝트샵 티셔츠를 다양하게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는 스토어의 특성상 코로나 시대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웝트샵이 전개하고 있는 활동과 그 방향성이 코로나 전후로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지인 브랜드가 아니면 팝업도 잘 진행하지 않을 정도로 다소 폐쇄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인지 운영 방향의 큰 변화는 없었는데요. 다만, 이벤트를 진행하는 빈도는 조금 더 늘어났습니다. 주변에서 ‘너희는 뭐 좀 해라’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 통에 파티를 비롯한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고요. 아는 동생들이 웝트샵에 놀러 오는 느낌으로 디제잉 파티를 한다거나, 자체적으로는 그런 소소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트릿 컬처, 그중에서도 인디펜던트한 성향의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오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중학생 시절부터 친구들이 패션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이 신은 신발과 입은 옷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트릿 패션과 그 문화를 체득한 것 같아요. 스투시를 처음 알고 입었던 게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고, 나이키를 처음 신은 건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죠. 또, 당시에 일본 밴드 ‘드래곤 애쉬(Dragon Ash)’를 좋아해서 소위 니뽄 스타일로 불리던 그들의 패션을 눈여겨보기도 했습니다. 인디펜던트한 성향의 브랜드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지인들의 영향이 큽니다. 제 주변 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 중 하나는 어떤 옷을 입고 나갔을 때 같은 걸 입은 사람을 마주치는 순간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른 어디에서도 소개된 적 없는 브랜드, 생산량이 많지 않은 제품을 찾는 것에 열을 올리는 편이고, 저 역시도 그런 의류나 브랜드를 디깅하는 성향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앞선 질문과 관련해서 브랜드 또는 상품을 선별하고 제안하는 일종의 큐레이션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계실 것 같습니다. 웝트샵이 브랜드를 엄선하고 소개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같은 옷을 입은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을 고유한 개성이랄까요? 그런 부분을 가장 중시하고 있고요. 못지않게 중요한 건 제가 그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의 여부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NBA를 아트워크적으로 해석해서 조명하는 매거진으로 시작한 ‘franchise’라는 브랜드의 의류를 소개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래픽부터 재질, 색감 모두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워싱된 색감이 특히 인상적이었고요. 다시 말해, 희소성의 관점에서나 디자인적 취향으로나 위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기준을 두루 충족하는 franchise 같은 브랜드와 그 상품을 발굴하고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신 2013년 무렵과 비교했을 때 현재는 스트리트 패션과 문화의 저변이 점차 확장되는 추세인 듯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웝트샵의 관점에서 최근 씬의 동향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대체로 이런 문화를 향유하는 개개인의 취향과 스타일이 굉장히 확고해진 것 같습니다. 디테일 요소가 많이 들어간 옷들도 인기를 모으고 있고, 신발도 어글리 슈즈와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도 나름의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말이죠.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에서 헤리티지가 있는 제품을 재출시하더라도 어느 정도 연령대가 있는 분들 사이에서는 화제를 모으지만, 결국 솔드아웃되지 않는 사례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만큼 취향이 뚜렷하다는 거겠죠? 다만, 너무 새로운 것만 좇는 양상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 서브컬처 씬 내 이태원역 주변, 한남동, 보광동, 해방촌 등을 아우르는 소위 ‘이태원 권역’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중심으로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태원을 처음 방문했던 건 초등학교 6학년 아니면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서태지가 신고 나왔던 에어포스 신발을 사고 싶었는데, 그걸 구매할 수 있는 게 이태원 뒷골목이어서 처음 가보게 되었죠. 이후에도 청소년기 저에게 이태원은 옷 사러 가는 곳이었고요. 그러다가 군 전역 후 20대 후반에 이태원을 다시 드나들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에는 역시 클럽을 자주 오갔는데, 역시 이태원은 클럽 문화가 강한 곳이죠.

그렇다면 클럽 씬이 이태원 일대의 지역 문화를 주도했다고 보는 게 맞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이태원을 방문하는 목적을 생각해 보면 명확하다고 보는데요. 놀거리, 즐길 거리를 찾아서 오는 분들이 많고 그 종착지는 보통 클럽인 경우가 많습니다. 소방서 골목을 중심으로 옛날부터 클럽 씬이 형성되어 있었고 점차로 확장되어 왔잖아요. 인근의 밥집이나 술집을 드나드는 건 그런 클럽을 방문하는 손님들이고요. 이태원의 상징이기도 하고, 대표적인 콘텐츠죠.

앞선 질문에서 말씀해 주신 이태원 지역의 특성이 웝트샵 위치를 선정할 때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사실 이 공간에 자리 잡은 과정은 지역 특성과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된 건 아니었습니다. 웝트샵을 운영하기 전 다른 일을 할 때 이태원을 자주 드나드니 먼저 한남동에 사무실을 구했는데요. 한 1년 정도 지금의 웝트샵 자리가 비어있는 거예요. 근데 전면이 널찍하게 트여 있고 구조적으로도 괜찮아 보여서 관심이 갔고 결국 공간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남동이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였던 것 역시 마음에 들었고요.

2016년 매장을 오픈하셨으니 어느덧 8년 차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공간을 운영하며 경험한 한남동 일대는 어떤 곳이었나요?

오픈 초기에는 몇몇 카페가 유명한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여성분들이나 커플 단위 방문객이 많았는데요. 방문객 유형이 점차 가족 단위로도 확장되어 나가더군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조금씩 패션의 중심지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꼼데가르송을 비롯해서 저희나 비이커가 제법 오랜 기간 일대를 지킨 패션숍이고요. 안쪽 골목에는 동대문 계열의 디자이너 브랜드 쇼룸도 다수 있거든요. 그래서 점차 쇼핑하러 오는 동네로 변모해 왔어요. 최근에는 빌라를 통으로 개조해서 오픈하는 베이커리나 디자인 쇼룸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 나가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가리켜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 지역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태원 내에서도 세부적으로는 골목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이태원에 오래 있던 사람들은 해밀톤호텔 주변은 잘 방문하지 않는 편이고요. 오히려 그 일대는 외부에서 이태원을 놀러 오는 분들의 비중이 높죠. 오히려 이태원 토박이라고 할만한 분들은 소방서 뒷골목과 퀴논길 방면을 더 많이 오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외부에서는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이태원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코로나 전후로 크게 바뀐 게 없어요. 오히려 이태원의 위기라는 일종의 프레임은 외부에서 방문하시는 분들, 혹은 외부에서 지역을 조명하는 시선에 의해 생겨난 것에 가깝죠. 물론 조금의 변화는 있지만 결국 ‘이태원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크게 바뀐 건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요즘은 이전보다 눈치를 더 많이 보게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원래부터 이태원은 왁자지껄한 게 매력인 동네인데, 가게들이 코로나와 여러 어려운 상황을 겪다 보니 예전처럼 적극적인 영업을 하는 걸 고민하는 눈치랄까요? 확 열었다가 괜히 사고라도 나면 또 언론의 뭇매를 맞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십니다. 근데 원래 이태원은 ‘눈치 안 보는 동네’거든요. 그래서 저는 예전처럼 시선 신경 안 쓰고 문화적으로 더 소란스러워지고, 누구나 즐겁게 놀러 오는 곳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