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 소셜 클럽
이태원 헤리티지 맨션 묻고
울프 소셜 클럽 김진아 대표 답함
울프 소셜 클럽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자기만의 방›에서 영감을 얻은 공간으로 ‘밖으로 나온 자기만의 방’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음악을 즐기면서 편하게 쉬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자기만의 방>에서 영감을 얻은 공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울프소셜클럽은 어떤 공간인가요?

울프소셜클럽은 2017년 3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2016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 사이에서 안전에 대한 자각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저 역시 그중 하나였는데요. 당시 사건이 발생한 장소와 가까운 서초동에 거주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 사건이 더욱 크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안전하게 모여서 얘기를 하며 서로를 발견할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울프소셜클럽을 만들었습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이 공간은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에서 영감을 얻었고요. ‘밖으로 나온 자기만의 방’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랐어요. 홀로 방에 있는 느낌으로 맛있는 걸 먹으면서 좋은 음악을 즐길 수도 있고, 서로가 서로만의 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그런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파이’가 지닌 중의적인 의미 - 달콤한 파이 & 사회적 지분으로서의 파이 - 를 위트 있게 활용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대표님께 두 가지 파이는 각각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치밀하게 전부 계산했던 건 아니었고요. 이 공간을 2년 정도 운영할 즈음 몰입했던 여성의 사회적 지분이나 성별 격차에 대한 얘기를 책에 담아내면서 파이에 비유했죠.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란 제목을 통해서요. 왜냐면 열심히 일하고 열정이 넘치는 저보다 어린 동생, 후배 여성들에게 그런 얘기를 보다 쉽게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아무래도 광고 업계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오랜 기간 직업적으로 대중을 상대해 왔기 때문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계산할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우리는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고 싶잖아요. 그래서 제가 울프소셜클럽에서 주로 판매하고 있는 파이와 여성이 자기가 하는 만큼 누려야 할 사회적 지분을 엮어 표현했습니다.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담론이 나날이 뿌리를 내리는 와중에, 여전히 고민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이슈들이 상존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대표님께서는 2023년 대한민국 여성의 현주소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육체적인 거리 두기를 했지만 누구나 정신적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기간 소외감이나 우울감을 쌓아왔던 사람들에 의한 충동적인 범죄가 점층적으로 드러나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여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느낌이랄까요? 그러다 보니 사회 운동 역시도 힘을 잃게 된 것 같습니다. 원래 목표가 뚜렷해야지 그쪽으로 열심히 달려가는데, 지금은 여기까지 왔는데 그다음은 어디로 가야되는지 약간은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코로나 사태와 같은 건 인류가 경험하지도 못했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의 여파가 상당히 오래갈 것 같은데요. 코로나 시대가 남긴 결과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드러날 것이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그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 울프소셜클럽과 같이 신념을 교감하고 전파하는 공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공간보다는 주인장의 철학이나 관심사가 엿보이는 곳을 방문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 공간을 보며 이런 사람이 있구나 추측하고 경험하는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같은 맥락에서 울프소셜클럽이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그런 스토리와 철학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없이 많은 유행하는 가게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기억 상실의 도시 서울에서는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고요. 같은 맥락에서 그런 공간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계속 버텨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마치 팝업 스토어나 페스티벌처럼 잠시 생겼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한 자리를 지키며 이어가는 무언가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이태원을 오갈 때도 이 가게가 계속 있는지, 저 가게는 혹시 문을 닫았을지 그런 걸 계속 체크해 보거든요. 그러면서 안도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갈만한 공간의 수가 줄어드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하고 말이죠. 제가 이태원에 처음 정착하게 된 이유도 사실 좋아하는 공간 때문이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욱 각별한 것 같습니다.

이태원과 처음 연을 맺게 해준 그 공간은 어떤 곳이었나요?

맥파이 브루잉을 알고 난 이후로 이태원을 드나들게 되었죠. 그전에는 홍대에서 대학 생활을 한 뒤로 10년 넘게 주거와 업무 모든 걸 강남에서만 해왔기 때문에 이태원과는 접점이 없었는데요. 2012년경 친구와 함께 맥파이를 처음 방문했을 때 뭔가 새로운 대안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뻤어요. 그러면서 동네 자체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고, 아예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맥파이 친구들과 친해져서 브랜딩이나 제품 네이밍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이태원은 성, 종교, 문화적 소수자들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기반을 두고 활동해 온 지역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대표님께서는 이태원 권역의 지역적 의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이방인들의 고향 같은 동네죠. 저도 서울 사람이 아니라 지방에서 상경해 대학에 들어가고 일해왔던 사람이라서 언제나 이방인으로 살아왔는데요. 아무리 강남에서 오래 지내도 지역에서 환영받는다는 감정이나 소속감을 느끼긴 어려웠어요. 서울은 항상 누군가를 밀어낼 준비가 돼 있는 도시이긴 하지만, 강남은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니까요. 그래서 이태원으로 왔을 때 이방인들이 모여 서로를 조금 더 챙겨주고 관심을 갖는 모습들이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이곳에 찾아오게 되었고, 나아가 여기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오랜 기간 공간을 운영하며 경험해 오신 이태원 지역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울프소셜클럽을 한남동에 오픈하신 과정과 이유 등도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 제 가게를 오픈했던 건 2013년 경리단길이었어요. 그땐 앞서 말씀드린 맥파이를 보고 동네에서 함께 뭔가를 하면 즐거울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동업자와 함께 ‘골목 바이닐 & 펍’이라는 공간을 오픈했는데, 바이닐로 디제잉을 하고 캐주얼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형태의 펍이었죠. 당시에는 LP바 라고 하면 중년 아저씨들이 정장을 입고 위스키를 마시는 다소 칙칙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저희는 그걸 완전히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게를 오픈하자마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경리단길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된 것에 제가 운영하던 공간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2014년, 2015년 넘어가면서부터는 제가 정말 좋아했던 모습들은 급격히 사라졌고 기획 부동산의 활동으로 인한 상업화의 결과, 끝내 모두가 알듯 골목은 조용해졌어요. 2017년 울프소셜클럽을 준비하면서 한남동을 택한 건 이태원 일대를 떠나고 싶진 않지만 피신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최대한 늦게 일어날 것 같은 곳을 찾아서 온 거죠.

지역 내부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가리켜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코로나 시기를 지난 뒤 최근 이태원의 동향에 대해 직접 경험하신 바 또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여름을 지나면서 분명한 니즈가 있기 때문에 이태원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요. 다만 그런 니즈가 클럽을 비롯한 유흥에 한정된 느낌은 다소 아쉽긴 합니다. 해밀톤호텔 뒷길만 봐도 매력적인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많았던 전과 달리 상업화되었거든요. 소비 패턴이라는 게 군중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에 타인의 소비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이태원에 대한 소비가 유흥에 집중되는 건 건강한 생태계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이태원 권역이 역 주변, 해방촌, 경리단길, 한남동 모두 제각기 개성과 매력이 가득했던 반면, 요즘은 각각의 지역이 특정 업종을 중심으로 뚜렷하게 분리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한남동은 카페 골목, 이태원은 클럽 골목으로 확 나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카페 골목에는 카페만 너무 많고, 클럽 골목에는 클럽 일색인 건 재미가 없지 않을까요? 어느 정도 원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태원 본연의 다양성을 되찾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이태원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장기간에 걸친 셧다운의 후유증인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울프소셜클럽을 어떤 공간으로 운영해 나갈 계획이신가요?

무언가를 억지로 시도하기보다는 지금의 모습과 가치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보람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새로운 걸 추구하고 쫓아가길 좋아하는 한국에서 뜻하는 바를 유지하며 장사하는 건 정말 쉽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물론 가만히 머물러 있겠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방문해 주시는 분들은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내부적으로 ‘소리 없는’ 노력과 업데이트가 꾸준히 이뤄지거든요. 그렇게 사람들이 울프소셜클럽에 기대하는 바에 변함없이 부응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결같은 공간이고 싶어요. 울프소셜클럽처럼 철학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공간일수록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거거든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기로 한 시간에는 문을 열어두는 것, 영업시간에는 별다른 걱정 없이 당연히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 그런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태원 지역의 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가길 희망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분명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추세이지만, 이태원처럼 응집된 커뮤니티를 갖춘 곳은 드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요소가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맛과 멋, 문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그런 콘텐츠들이 유지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해방촌의 모로코로나 카사블랑카와 같은 생소한 문화와 맛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자리를 지켜주길 기원합니다.